"부인해도 부인되지 않을 5·18을 위해"

■광주5월민중항쟁, 당시 전남대생을 만나다-④ 이재의 씨(경제·75)

2022-05-15     글 한청흔 기자, 사진 장지혜 수습기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 남아
책 통해 항쟁 주체인 시민의 이야기 담고자 노력

"청년기에 우연히 겪은 5·18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평범한 일상을 살기 어려워졌다. 감옥을 다녀오니까 취업도 안 돼서 몇 년 동안 고생했다. 그릇, 술, 땅콩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복학 후 항쟁 기간 목격했던 것을 언젠가 기록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5·18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록을 정리하고 알려야 했다. 부인해도 부인되지 않을 기록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광주5월민중항쟁(5·18)을 기록하기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안병하 평전』을 쓴 이재의 씨(경제·75)의 이야기다. 그는 5·18을 기억하기 위해 아직도 자신의 시간을 쏟고 있다. 그는 현재 5·18기념재단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비밀 기획실 활동 동참
“민주화를 외치기는 했지만, 10·26 사태 이후 갑자기 민주화가 가능해질 시기가 오자 혼란스러웠다. 10·26 사태는 촛불혁명처럼 싸워서 쟁취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권력의 공백을 민주화로 채우지 않으면 다른 세력이 권력을 탈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1979년은 그에게 특별한 시기였다. 그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다. 그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은 상상하지 못했다. 억압적인 정치 체제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 입학 후 독서 서클 '루사'에서 억압적인 정치 체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울분을 사람들과 나눴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에는 총학생회가 잡혀갈 상황을 대비해 비밀 기획실 활동에 동참했다. 비밀 기획실은 학생회를 간접적으로 도왔다. 학생회 지도부와 함께 비밀 기획실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5월 17일 직전 거의 피신했다. 그러나 상황을 지켜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광주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주로 현장을 지켜보는 것으로 5·18을 경험했다. 18일부터 21일까지 일부러 돌아다니면서 중요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가 직접 본 풍경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집필하기 위한 감각과 느낌을 만들어줬다.

죽음 각오하고 도청으로
"5월 22일 도청에 들어갈 때 계엄군이 물러갔지만, 그날 저녁에 도청으로 계엄군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청에 들어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간 것이다.“

5월 22일부터는 수습을 위해 질서를 만들어야 했다. 협상을 통해 상황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었다. 이 씨도 이틀 동안 상황실에서 일했다.

"운이 좋았던 것으로 볼 수도, 중간에 빠져나온 것이기에 부끄러운 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25일 새벽 도청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24일 며칠 동안 갈아입지 못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갔다. 집에 들어오지 않아 그가 죽은 줄 알았던 그의 가족들은 그가 다시 도청에 가는 것을 말렸다. 그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이 항쟁의 주체"
“광주 시민이 5월 항쟁의 주체였다. 그들이 죽을 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항쟁 지도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투쟁을 이끌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5·18을 북한군이 침투해서 만든 사건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논리와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썼다.”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는 1984년도 말 그에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집필을 제안했다. 역사적인 사건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5·18에 대한 전모를 알 수 없어 그 내용을 알고 싶어 했던 다른 지역 사람들의 요구가 빗발쳤던 것도 책이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였다. 5·18의 진실을 전국에 알려 전두환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후 그는 책을 쓰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 책에서는 학살 내용뿐만 아니라 주체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는 광주 시민이 항쟁의 주체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극비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기에 취재하기 어려웠던 그는 "직접 봤던 장면들이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상황을 묘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과 『안병하 평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개정판을 쓰게 된 것은 5·18을 북한군과 연관 짓는 모욕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초판으로는 현재 사람들의 감각을 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새로 밝혀진 사실을 수용해 2017년 개정판을 집필했다. 개정 이전에는 시민의 이야기가 90% 정도였다면 경찰, 군, 행정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절반 이상의 분량으로 늘렸다. 진압했던 사람들, 기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어땠는지 복합적으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

"시민들은 절대 다치지 않아야 한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가 돼야 한다. 경찰이 정치적인 이유로 일해서는 안 된다.“

6월 항쟁 직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안병하 씨가 증언을 위해 적어둔 비망록 내용이다. 그는 <광주일보> 기자 시절, 5·18 당시 경찰국장이 민주화 운동 보상 신청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 씨를 취재했다. 취재 당시 그는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안 씨의 태도가 5·18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안병하 기념사업회는 그에게 책을 써주길 부탁했다.

“5·18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났지만,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수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5·18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거스를 수 없는 민주화의 출발점이고 이정표다.“

그는 "전남대 학생에게 5·18은 족쇄이기도, 자랑이기도 하다"며 "이것을 역사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조건으로 인권을 선도하는 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전남대학교의 주체가 되는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궤도에 오르게 한 5·18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며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