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매일 먼지와 함께 생활한다. 그 먼지는 너무 작고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그 위해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때그때 먼지를 치우지 않으면 먼지는 쌓이게 되고 쌓인 먼지를 치우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 성차별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 먼지처럼 쌓여있는 차별과 폭력의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방식에서 성차별을 골라내는 힘’ 바로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갖추고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국어학자가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노랫말은 무엇일까.¹ 대다수 사람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이 학자 역시 ‘사랑’을 이길 노랫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노랫말 빈도를 분석해보니 놀랍게도 ‘사랑’이 4위였다. ‘사랑’을 압도하는 노랫말 1위부터 3위는 ‘나’, ‘너’, ‘우리’였다. ‘내가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사랑 이야기’, ‘우리의 만남 이야기’처럼 우리는 사랑, 만남, 행복, 이별, 그리움을 단독으로 언급하기보다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관계성 안에서 노래한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관계의 언어’이며, 성인지 감수성은 바로 ‘좋은 관계 맺기’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해 달라”, “뽀뽀해주면 추천서 만들어 줄게”, ‘수업 시간에 뒤에서 껴안는 자세로 지도’하는 등 학생들을 향한 대학교수의 성적 언동이 문제가 됐다. 대학으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은 교수가 그 결정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학생들과 평소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고 친밀함을 느껴 농담과 장난을 한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또 피해 학생들이 강의 평가에 불편한 점을 언급하지 않고 교수의 교육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 사건이 발생하고 한참 후에 성희롱의 문제를 제기한 점을 들며 신고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대학의 해임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며 성인지 감수성의 필요성을 최초로 언급했다.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라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² 교수와 학생 간에는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관계의 우위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교수가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성차별이나 성희롱 언동을 하더라도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학점과 진로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교수가 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러한 힘의 차이를 인식하고 학생들을 존중과 평등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점검해야 한다.
좋은 관계 맺기는 학생과 학생 간에도 필요하다. 최근 어느 대학 축제에서 운영한 주막 현수막과 메뉴판이 문제가 됐다.³ 현수막에는 ‘오빠... 여기 쌀 것 같아’라고 쓰여 있었고 ‘쌀 것 같다’는 글자 위에는 물방울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가격이)’라고 쓰여 있었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즉 성행위를 자동으로 연상하게 하는 현수막이었다. 메뉴판에는 음란물 제목을 그대로 붙여 놓은 것 같은 메뉴가 가득했고 동영상 파일명(AVI)을 붙여서 음란물 동영상을 떠올리게 했다. 대학 축제에서 주막 현수막과 메뉴판의 선정성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성적 불쾌감을 주는 게임들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을까. 기획한 주최 측에서는 재치 있고 재미있다며 뿌듯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성인지 감수성의 눈을 통해 성적 불쾌감으로 인식하는 두 관점의 온도 차이를 고민해 봐야 한다.
사람들은 농담을 참 좋아한다. 농담의 어떤 요소가 사람들을 웃게 하는지 궁금한 한 학자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찾아라!’라는 연구를 했다.⁴ 이 연구는 간단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웃긴 농담을 농담 연구 웹 사이트에 글로 써주면 된다. 네티즌들이 그 농담을 읽고 재미 정도를 점수로 평가하면, 높은 점수를 얻은 농담끼리 토너먼트를 해서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찾는 방식이다. 흥미 있는 실험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너도나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알고 있다며 농담을 올려주었다. 며칠 후 이 연구자가 언론에 나와 “이 연구 추접스러워서 못 하겠어요. 그만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농담 연구 웹 사이트에 올라 온 글의 상당수가 음담패설이었다. 농담은 곧 음담패설이라는 공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재미있는 농담쯤으로 여긴다면,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성적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표현할 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고 민감하게 구는 사람’으로 취급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음란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는 재미있는 농담이나 장난이라는 추진기를 달고 학교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누군가의 외모를 성적으로 평가하고, 성적인 내용을 캐묻고 소문내며, 성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확대된다. 단톡방 성희롱이 그 예이다. 또 학우를 성 상품화하기도 한다. 축제 현수막과 메뉴판 사례처럼 말이다. 이것을 농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을 친밀함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성적 대상화’가 지니고 있는 차별성과 폭력성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성적 대상화는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겠다는 뜻이다. 어떤 물건일까. ‘성적인 가치로 평가받는 물건’의 의미이다. 누군가 우리를 오직 하나의 가치, 즉 성적 가치로만 평가한다고 상상해보자. 또 우리를 성적인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품평하고 조롱하며 비하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느끼는 감정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이다. 성적 대상화는 ‘내가 너를 이렇게 성적으로 평가해도 돼, 내가 너를 이렇게 성적으로 조롱해도 돼’라는 잘못된 우월감의 표출이다. 그 잘못된 우월감은 어떻게 얻은 것일까. 바로 우리 사회의 성별, 나이, 지위와 관련한 권력관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힘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교수와 학생 간에는 교수가 관계의 우위에 있기에 학생은 약자의 위치에 있지만, 학생 역시 누구와 어떤 맥락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강자가 될 수 있다. 이런 힘의 차이를 잘 못 사용하였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차별과 폭력이다.
일상생활 속 차별과 폭력의 먼지는 혼자 힘으로 털어내기 어렵다. 우리가 함께할 때, 즉 ‘같이’의 ‘가치’가 높아지며 존중과 평등의 변화로 이어진다. 성인지 감수성은 멀리 있지 않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의 언어 사용을 점검해보자. 우리는 말의 재미를 위해, 추임새를 하듯 욕설을 사용한다. 우리가 듣거나 사용하고 있는 욕설 세 가지만 떠올려보자. 그 욕설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그 욕설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욕설에도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이 깨달음을 통해 우리의 말과 행동을 존중과 평등의 관점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양동옥 교수(심리)
1) 한성우(2018). 노래의 언어. 서울: 도서출판 어크로스.
2) 대법원(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3) 파이낸셜뉴스(2022.09.23.) “오뎅탕 돌려먹기” 한 대학 축제 주점 '음란물급' 메뉴판 논란.
4) Wiseman, R. (2007). Quirkology: The curious science of everyday lives. London: Pan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