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경과 도영 - 2
소설 연재 : 흘러갈 때는 6화
인생은 스릴러다. 녀석은 나도 모르는 새에 잔잔한 파동으로 나의 몸과 그 안에 든 정신을 서로 분리했다.
어느 날 세영 언니가 소개해 준 의사를 찾아갔다.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병명은 말해주지 않고, 작은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일기를 써보세요. 내용과 분량은 상관없습니다. 그저 내가 이것을 왜 노트에 남겼는가. 그것만 생각하세요. 그게 이 일기장에 얽힌 유일한 법칙입니다.”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찾아온 환자에게 일기를 쓰라니. 잔인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지 않은가. 매일 출근하듯 들락거리던 찬경이의 방으로 향하듯 펜을 들고, 내려놓았다. 내가 종이에 쓴 것은 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흔적. 찬경이가 일그러진 차체 안에서 되뇌던 주문 같은 것이었다.
일기의 이름이 ‘찬경과 도영’인 것은 내 인생의 장르가 뒤바뀌기 전, 그 시절을 기억한 탓이었다. 부스러기로 가득 찬 노트를 들고 의사 선생에게 찾아가 보였을 때도 그 아이 이름이 나왔다. 의사는 점쟁이가 아니었지만, 그 이름을 말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의사와의 만남이 끝나고 ‘찬경과 도영’에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 계속 마구 엉켜있는 일상을 조금씩 써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용기가 생겼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의 얼굴이 보인다. 의사는 그 얼굴을 보아야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했다. 이 글이 일기임을 고백함은 자그마한 용기에서 말미암은 소소한 충동이다. 다음 장부터 다시 나는 나의 일상 속으로 침전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지 못하는 세계에 갇힌 일종의 앨리스처럼 그 얇은 책표지 사이에 나를 가둔다.
내일 세영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작업실에서 끙끙거리며 쓴 칼럼을 그녀에게 보여주러. 숙제 검사받던 20년 전처럼 심장에 땀이 흥건하다. 나의 치료 경과는 어떠할까. 긴장 때문이라도 오늘은 빨리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