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컴’의 여정을 따라

■1662호 줄탁

2024-04-08     전대신문

2009년 방영된 김연아 선수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김연아 선수가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으며, 해외 유명 선수들의 입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스포츠 스타의 다큐멘터리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엄청난 강도의 훈련과 부모님의 희생으로 어려운 가정환경, 신체적 약점, 열악한 훈련 환경을 딛고 정상에 오르는 각본을 따른다.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컴>도 마찬가지다. <베컴>도 전형적인 각본에 따라 영국의 스포츠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축구선수의 꿈을 가졌을 때부터 은퇴 이후의 삶까지를 다룬다. 하지만 베컴을 축구 선수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각본과 결을 달리한다. 이 차이는 각 에피소드 오프닝에서부터 드러난다.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경기장을 누비는 베컴이 아닌 양봉을 하고, 주방을 강박적으로 정리하고, 한적한 교외를 즐기고, 일주일 입을 옷을 미리 결정하여 따로 걸어두는 은퇴한 베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베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인터뷰 대상자를 폭넓게 구성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스타의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 대상자가 되는 것은 소속 팀의 감독, 동료, 부모님, 스포츠 관계자, 어린 시절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친구 정도이다. <베컴>에서는 이들은 물론 맨유의 안내원과 물품관리 직원, 그를 쫓아다녔던 파파라치까지 인터뷰에 참여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본 베컴을 증언함으로써 모자이크처럼 당시의 상황과 베컴을 구성한다.

이들의 증언들은 종종 일치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에 있어도 사람마다 기억, 인식,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이 틈을 봉합하기보다는 기꺼이 드러낸다. 감독과 선수의 입장에서,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의 입장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심지어는 베컴 부부가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베컴의 외도 사건을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오락 요소로 활용하지 않고 이 사건이 당시 부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부분들은 다큐멘터리 <베컴>이 영국을 빛낸 축구선수였던 베컴에게 헌사되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게 한다.

나아가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의 아내인 빅토리아 베컴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만약 베컴이 성공적인 축구 선수로서만 조명되었다면 빅토리아는 베컴에게 방해되는 인물로만 비쳤을 것이다. 베컴 축구 인생에서 중요했던 1998년 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 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임신 소식을 알린 빅토리아에게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는 것도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말한다. “그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죠. 우리가 원한 일이니까요.” 그에게 베컴은 축구 선수이기 전에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베컴>이 탁월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 인물들의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베컴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한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해준다. 사소하게는 결혼식 때 보라색 슈트를 입은 것, 크게는 미국 리그에 대한 선입견에 구애받지 않고 LA 갤럭시를 선택한 것을 두고 어느 순간부터는 ‘베컴답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축구선수를 넘어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영국인으로, 남성으로, 유명인으로, 빅토리아의 남편으로, 네 자녀의 아버지로 베컴을 호명함으로써 그 선택과 결정을 이해하게 한다. 베컴 그 자체를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베컴’으로 충분해 보인다.

정소희(사회학과 석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