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신의 상징 “광주시민들 치유받는 장소 되길”
전대신문 창간 70주년 기념 ‘문화도시 광주, 그 이야기를 따라서’ ④ 망월동
“5·18 직접 경험하는 교육 필요”
묘역 청소부터 오월 기억 여행까지 5·18 기억하는 시민들
광주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장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전대신문>이 여러분의 문화도시 광주 탐방을 함께한다. 네 번째 순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 망월동 일대다.
1980년 5월 29일, 광주시민들은 5·18민주화운동(5·18) 희생자들의 시신을 망월동 묘지공원(구묘역)에 옮겨왔다. 손수레부터 청소차까지 시신을 옮기는 데 동원됐다. 시민들은 옮겨진 시신 126구를 구묘역의 3묘역에 안장했고,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희생자들의 묘지가 한곳에 모여 있으면 피해자들이 뭉치기 시작한다”는 이유로 생활지원금을 주겠다며 묘지를 분산시키려 했지만, 시민들은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5·18묘지)가 완공되며 5·18 희생자들의 시신은 모두 신묘역으로 이장되었지만, 그들을 기리는 묘비는 여전히 구묘역에도 남아있다. 현재 구묘역은 5·18 이후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민주열사들의 묘지로 이용되고 있다. 기자는 다가오는 5월 18일을 기리며 지난 4일 망월동 5·18묘지를 찾았다.
5월 정신 돌탑은 쌓고, 전두환 비석은 밟고
구묘역에 들어가기 전 웅장한 돌탑이 눈에 띄었다. 옆 단풍나무와 비슷한 높이의 탑은 5·18 13주기였던 1993년 ‘5월 정신 계승을 위한 망월동 돌탑 쌓기 운동’에서 시작됐다. 돌탑 앞에는 ‘가신 이들의 억울함을 달래고 5월 정신을 올곧게 이어받기 위하여’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구묘역에 들어서기 전 기자도 민주열사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돌 하나를 찾아 탑에 올렸다.
돌탑에서 구묘역으로 가는 짧은 언덕에는 전두환 비석이 묻혀있다. 이 비석은 전두환 부부가 1982년 담양의 한 마을에 방문하고 세웠던 비석을 1989년 광주·전남민주동지회가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구묘역에 묻은 것이다. 비석 안내문에는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쓰여 있다. 방문객들은 이 비석을 지그시 밟고 참배를 시작했다.
5·18묘지에 진심 다하는 시민들
구묘역에는 더운 날씨에도 땀을 흘리며 묘비를 닦고, 잡초를 뽑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광주전남추모연대가 주관하는 ‘오월 맞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대청소’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광주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다는 박소연(26)씨는 “광주를 벗어나니 사람들이 5·18을 교과서에 있는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며 “오늘처럼 직접 찾아와 5·18을 느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ㄱ씨는 “묘역에 무명 열사도 계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자주 와보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떡과 생수를 나눠주던 박용수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장은 “5·18묘지는 광주시민 누구나 눈물 닦고 치유 받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며 “5·18정신의 상징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더운 날 고생 한다”며 시민과 기자들에게도 떡을 나눠주었다.
12살 열사부터 무명 열사까지
구묘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신묘역이 있다. 신묘역에 도착한 오전 11시경 뜨거운 햇살에 우산을 쓰고 방문한 한 참배객을 만날 수 있었다. 친할아버지를 뵈러 왔다는 봉우혁(26)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뵌 적은 없다”며 “가정의 달을 맞아 감사를 전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 날씨에 술 대신 냉커피를 봉복용 열사 묘에 뿌리고 절을 올렸다.
봉씨가 떠난 후 ‘광주 동구의 오월 기억 여행’이라고 적힌 목걸이를 건 아이들과 가족들이 방문했다. 아이들은 12살 어린 나이에 계엄군의 총에 맞고 사망한 고(故) 전재수 열사의 묘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5·18이 궁금하다는 이신우(12)씨는 “광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며 “5·18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묘는 없고 묘비만 놓여있던 10구역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10구역은 사망 사실은 확인되었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 비석만 놓여있는 묘지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희생되었지만 시신 혹은 시신과 이름 모두 찾지 못한 민주열사들께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 1일 기존 11개였던 5·18 관련 조례들이 하나로 통합되었으나 구묘역 안장 기준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안장 대상을 지금껏 유지했던 ‘민족·민주열사’로 유지할 것인지, ‘5·18 및 관련 진상규명 등 활동을 한 인물’로 제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지금까지 구묘역 안장은 ‘민주화운동에 특별한 공헌이 인정되는 자’라는 규정에 따라 5·18 구묘지 안장심의운영위원회가 심의·결정해 왔다. 그러나 광주시와 5·18 관련 단체들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구묘역 명칭과 안장 대상 및 기준 등에 관한 내용이 새롭게 정리될 예정이다.
문화도시 광주, 그 이야기를 따라서
1. 무등산
2. 양림 역사문화마을
3. 옛 전남도청 일대
4. 망월동
5. 청춘발산마을
6. 고려인마을
7. A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