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5·18
■1663호 다시 생각하며
“5·18”이라는 명사는 전남대 그리고 광주에서 운명과도 같은 단어로 느껴진다. 단체나 기관의 이름에, 도시와 길마다 5·18이 포함된 교통표지판에서부터, 5·18기념일, ‘5·18광장’ 등 이 지역의 일상에서 5·18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5월 내내 지역 신문과 방송에서 이 단어에 관한 뉴스가 등장한다. 생각해 보면 이 “5·18”이라는 명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내 개개인들의 관계를 구성하고, 그 내적 친밀성을 포함한다. 이 명사가, 이름이 사회를 구성하는 격자들의 출발점으로, 어떤 힘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남성에게 길을 물어보며, ‘저기 아저씨~’라고 말하는 것과 ‘저기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남성에게 감정적 차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과거 여성을 ‘아줌마’라고 손쉽게 부르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 호칭은 남성 중심 사회의 권위적인 용어로 공식적인 자리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명칭이 되었다. 어떤 주체에 대한 이름 짓기, ‘호명’은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의 관계, 그 관계를 형성하는 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5·18’이라는 이름 역시, 과거 “광주사태”라 불리며 왜곡과 폄훼의 대상으로 불렸기 때문에, 5·18민중항쟁, 5·18민주화운동 등 이 이름을 바로잡고 공식화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따라서 5·18이라는 이름은 명사이지만, 이 이름이 사용되는 것에 따라 일련의 사회적 행위가 이어지기 때문에 어떤 수행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수행성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서로 다른 행위가 생겨나고 이를 두고 ‘세대 차이’를 느끼기도 하며, 사회적 ‘갈등’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지난 4월 29일 전남대학교에서는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을 중심으로 지역 청년들과 5·18에 대한 대화의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청년은 ‘광주정신’, ‘5·18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5·18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의 1980년을 전후로 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있었지만,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답은 아닌 듯했다. 이에 한 청년은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주는 것”이 5·18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고,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5·18정신 계승!’은 1980년 이후 수 없이도 외쳤던 구호이지만, 구호가 쓰여진 깃발만 있을 뿐, ‘지금’ 세대를 위한 적절한 설명이 담긴 책은 아직 없는 것 같다.
5·18 40주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5·18 “비경험세대” “이후 세대” “다음 세대”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있다. “비경험 세대에게 5·18을 이양한다”는 말도 들린다. 이러한 담론에서 호명되는 주체들은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용어와 의제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시간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지금 세대’를 소환하는 권위가 베어있는 것은 아닌 의문이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주체들이 ‘5·18은 아직 경험세대의 것인데, 비경험세대에게 잘 줄테니, 잘 받아라’라는 식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면, ‘지금 세대’의 다양한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5·18이라는 명사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5·18을 어떻게 동사로 사용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