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무감각해지는 일상

■1664호 줄탁

2024-06-03     전대신문

학교에 머물러 있은 지도 벌써 햇수로 17년이 지났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박사과정까지 진학해버리는 바람에 학교가 집이고, 집이 곧 학교가 되어버린 생활이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거나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인 나의 일상에 직장인들의 주말이나 공휴일처럼 빨간날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닌 터라 거의 매일 같이 학교에 출근 같은 등교를 하고 있다.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는 터라 교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경우가 여러 번 있다.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들 몇 가지를 꼽아보면 내가 대학 신입생 때 지냈던 구 기숙사의 건너편 여학생 기숙사에서 벌어진 자살 소동이 있었고, 8년 전에는 용지관 외벽의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였던 30대 건설노동자 한 분이 추락하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기숙사 건물에서 우리 대학 1학년 학생이 추락하여 숨을 거둔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이 사건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사건의 현장을 직접 지나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건들이 나의 가장 가까운 일상적 공간 속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연구실로 향하는 출근길이나 산책 중에 마주치는 건물들은 지나간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곤 한다. 물론 바쁜 일상 때문에 사건들의 대부분은 기억의 한켠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늘내일 안에 마감해야 할 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현장의 긴박함은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이런 일상 때문인지 나는 교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나 죽음을 마치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일부라고 여기는 듯 죽음 자체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23일에 일어난 유학생 학우의 사망은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나의 일상에 충격을 주었다. 전남대학교 기숙사에서 20대 유학생 ㄱ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하루 전날 ㄱ씨는 공연 음란혐의로 경찰에 입건 되었지만,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저지른 실수라는 진술이 인정되어 기숙사로 돌아왔지만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ㄱ씨가 유명을 달리한 지 사흘째 되었던 지난 월요일(2024년 5월 27일)에는 외국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추모 행진이 있었다. 침묵 속에 진행된 추모 행진은 G&R 허브에서 출발하여 ㄱ씨 소속된 연구실이 있는 공학관 앞에서 1분간 묵념을 올리고 마무리되었다. 비극적인 죽음이 학교에서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사실은 비극적인 죽음들이 무관심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의 추모 행사 이후 교내에는 ㄱ씨에 대한 별다른 애도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퇴근길에 지나친 기숙사는 여전히 평온했고 학생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캠퍼스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교내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세상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고인에 대한 애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부재한 애도의 의례와 제스처와 함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또한 쉽게 잊히고 있는 것만 같다.

정찬혁(철학과 박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