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아닌 정체성”…시인 박준이 말하는 시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인 초청 강연

2024-07-12     김청우 수습기자

“의미 부여하는 삶이 곧 시인의 삶”
경제적 가치 제외한 문학적 가치 강조
문학의 가치는 ‘비현실 세계의 경험’

박준 시인이 지난 3일 김남주기념홀에서 강연하는 모습.

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계절 산문> 등을 쓴 박준 시인이 지난 3일 우리 대학 인문대 1호관 김남주기념홀에서 ‘마음 쓰기, 사유 읽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시인의 정체성과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연을 이어갔다.

 

변하지 않는 것, 시인이라는 정체성

박 작가가 생각하는 시인은 ‘정체성’이다. 동료 작가들과 함께한 비행 프로그램에서의 일은 그로 하여금 ‘시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박 작가는 “비행하러 가기 전 제출해야 하는 서류 직업란에 두 작가는 ‘무직’ ‘농사지음’이라고 적었다”며 “나는 직업란에 ‘노동자’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이어 “왜 시인을 시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이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시인이란 직업이 아닌 ‘취미’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터뷰 이후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박 작가는 시인이란 무엇인지 다시 정립했다. 그는 “직업에는 은퇴가 있지만 어떤 정체성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쭉 간다”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어떤 순간에는 ‘글을 써야지’하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체성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시인과 시인이 아닌 삶의 가장 큰 차이는 삶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지 그 여부”라고 말했다.

 

비현실의 세계 경험할 수 있는 문학

지난 3일 김남주기념홀에서 시민들이 강연을 듣고 있는 모습

박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의 가치는 ‘비현실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에 있다. 시와 같은 문학은 누군가에게 허무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현실적이지 않으며 과학적 근거와 논리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과 인문학의 본질은 헛소리”라며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실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비현실적 이야기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허무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지점에 문학의 본질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시인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 작가는 “경제적 가치 이외의 문학적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시인은 어쩌면 무모한 길”이라며 “시 한 편에 겨우 3만원을 번다”고 말했다. AI의 예시를 들어 설명한 박 작가는 “시는 돈이 안 되니까 AI도 문학판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종종 청소년들을 만나기도 하는 박 작가는 “가장 처음 받는 질문은 ‘연봉’”이라고 말했다. 이에 씁쓸한 감정을 내비친 그는 “첫사랑을 물어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니었다”며 “문학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 후 박준 시인이 독자들과 사인회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