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언어·경제적 장벽 있어도 한국서 살고 싶어요”
<전대신문> 창간 70주년 기념 ‘문화도시 광주, 그 이야기를 따라서’ ⑥ 고려인마을
비자 문제로 생활 불안정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라고 생각”
광주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장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전대신문>이 문화도시 광주 탐방을 함께한다. 여섯 번째 순서는 조상의 고향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온 고려인 동포들이 모인 곳, 광산구 월곡동의 고려인마을(마을)이다.
2000년대 초반,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장단지가 있는 광주 광산구에 왔다. 홀로 찾은 한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어려움을 겪었던 신조야(68)씨는 광산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센터)에서 문화적·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이때 받은 도움에 감사하며, 2001년부터 센터의 이천영 목사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도움을 얻은 고려인들이 월곡동에 하나둘 모였고, 현재는 7천여명(고려인마을 추산)이 살고 있다. 신씨는 마을 대표이자 대모로서 △마을협동조합 △고려인동포 지원사업 △고려인의 날 행사 등을 이끌고 있다.
고려인은 1860년대부터 광복 때까지 △강제동원 △항일독립운동 △농업이민 등으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한국인과 그의 후손들을 뜻한다.
고려인들의 문화와 마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달 22일 고려인마을로 향했다.
“태어난 곳 달라도 우리는 한국인”
비자와 언어, 경제적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고려인들은 한국의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을 그리워하던 가족들을 보며 ‘고려인은 한국인’이라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살았던 김우리아나(70)씨는 “나만 외모가 달라 힘들었다”며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과 살 수 있게 돼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생애 3번째 시집을 낸 김블라드미르 시인은 “마을 주민들의 후원으로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이루어진 시집을 출간했다”며 “우리 모두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려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시민권’
마을에서 만난 고려인들은 모두 한국 국적을 받는 ‘시민권’을 원하고 있었다. 조상의 고향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비자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2013년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들어왔다는 문메체슬라프(70)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진짜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며 “2~3년마다 비자를 받으러 우크라이나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시민권은 △최소 5년 이상 한국 거주 △한국어능력시험 통과 △재정적 자립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연봉 기준이 계속 오르고 있어 고려인들이 취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고려인들은 △동포비자(F4) △방문동거비자(F1) △방문취업비자(H2) △난민비자(G1) 등을 받는다. 동포비자는 3년마다 갱신하며 유지할 수 있어 안정적이지만, 대졸 이상의 학력이나 공인 기술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방문동거비자는 동포의 배우자나 자녀가 받는 비자로, 취업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맞벌이를 하지 못해 소득이 적어 다시 구소련 지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은 고려인이 받고 있는 방문취업비자는 대부분 1년마다 연장해야 해 생활이 불안정하고, 불법체류 가능성도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한국에 입국해 난민비자(G1)를 받은 고려인은 취업도 할 수 없고, 건강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박빅토리야(37)씨는 “동포들이 시민권을 받는 기준이 완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타국에서 지켜온 한국 음식 문화
신 대표는 올해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노인복지센터(복지센터)에 노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마을의 청년들이 준비한 식탁에는 김치, 콩나물무침 등 한국과 비슷한 반찬부터 고려인식 피클, 찐빵 등 특별한 음식도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오이냉국에 식초와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과 달리 된장을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신 대표는 “고려인들도 고향에서 한국처럼 김치를 담가먹는다”며 “재료는 조금씩 달라도 음식 문화를 지켜왔다”고 말했다. 비슷한 생김새의 음식이지만 양념에 들어간 향신료들이 특이했다.
식사를 하던 김우리아나씨는 “모여서 밥을 먹으니 고려인들끼리 대화가 많아졌다”며 “한국 일상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문화도시 광주, 그 이야기를 따라서
1. 무등산
2. 양림 역사문화마을
3. 옛 전남도청 일대
4. 망월동
5. 청춘발산마을
6. 고려인마을
7. A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