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지금 두 배로 많아지길”…창작자·사서 지원 강조

<전대신문> 창간 70주년 기념 ‘이 시대 여성작가를 만나다’ ④ 정세랑 소설가

2024-10-07     서울/글 박소희 기자, 사진 박서지 기자

인물 구상 시 늘 핵심 질문 설정해
종이·디지털 매체 다중 기록 중요
자료조사 5년 이하로 걸린 적 없어

<전대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 시대 여성작가를 만나다’ 기획을 이어간다. 네 번째 여성작가는 번지는 선의와 내면의 힘을 믿는 정세랑 소설가다.

지난 2010년 장르문학 전문잡지인 <판타스틱>에 단편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올해로 데뷔 14년 차다. 작품에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이만큼 가까이>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가 있다. 이외에도 △소설 <재인, 재욱, 재훈>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등의 작품이 있다. 작년 10월에는 장편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출간했다.

지난 7월 22일 서울의 ‘아트메이저’ 카페에서 정 작가를 만나 창작과 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는 축적된다. 문명은 “한 사람, 한 세대의 수명”이 쌓이고 쌓여 점차 이룩된다. 그렇게 세계는 ‘어떠한’ 모습을 띤다. 늘 바라는 모습인 경우는 별로 없다. “모든 게 거꾸로 가는 것 같고, 진짜 중요한 문제에서 서로 맞닿지 못하고 대립에만 빠진다.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각자의 혼란 속에 던져진 느낌이 든다.”

이러한 세계 속 정세랑 작가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던져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더뎌 보여도 나아간다고,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이 결국 쌓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정 작가는 “엉망진창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가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멀리 있는 결실을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과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 <피프티 피플> 속 50명가량의 인물까지 작가의 작품에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얼굴을 가진 인물들이 나온다.

인물을 구상할 때는 각 인물의 질문을 설정한다. 정 작가는 “핵심 질문을 설정하면 세부적인 것들도 따라온다”고 말했다. 심시선의 핵심 질문은 ‘어떻게 하면 끝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이며 안은영의 핵심 질문은 ‘나도 그렇게 강하지 않은데 더 약한 부분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이다.

정 작가는 “인물을 처음 그릴 때 늘 ‘한 사람을 둘러싼 시대, 사회, 집단이 그 사람과 불화할 때 그는 어떻게 해나가고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인가’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항상 3~4개 작품 한꺼번에 준비

작년에 출간한 책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작가가 직접 경주로 여러 번 답사를 다녀오고, 구상한 후 7년 만에 완성됐다. 실제로 작품을 쓰기까지 오랜 자료조사를 하는 정 작가는 “글을 쓰는 시간 자체는 8개월, 아주 긴 소설이면 1년 정도 걸린다”며 “늘 자료조사가 오래 걸리는데 5년 이하로 걸린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자료조사는 전환점이 중간에 생기기도 하고 계획대로 줄곧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3~4개의 작품을 한꺼번에 준비한다. 정 작가는 “어떻게든 준비 기간을 줄여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여유 있게 잡는다”고 말했다.

자료조사를 하며 지속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으로는 작품마다 한 권씩 노트를 마련한다. 그는 “머릿속에 주제별, 소재별 구획을 나누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작업하면 혼동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래서 메모가 중요한 것”이라고 답했다. 스스로의 기억력을 거의 믿지 않는다는 정 작가는 “메모가 점점이 모여 작품의 윤곽선을 그린다”며 “어떤 시기에만 쓸 수 있는 글들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종이에 기록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묻자 그는 “종이의 안전함이 분명히 있다”며 “전국의 도서관이 동시에 다 파괴되지 않는 이상 책은 언제나 복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료조사를 하며 정제되고, 확인된, 편집된 정보의 귀중함을 많이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작가는 종이 매체와 디지털 매체의 상호 보완으로 기록의 다중 보호를 강조하기도 했다.

 

“기후 위기 고민하는 리더가 힘 얻길”

“복잡한 것은 복잡하게, 요약이 아닌 확대로 가야 한다.” 왜곡을 막기 위해 복잡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요약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각도로 파고드는 모색의 필요성은 정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소설 내용의 일부가 인용되어 돌아다니다 보면 점점 맥락이 희미해지고 슬로건처럼 한 줄의 문장만 남는다. 그는 “여러 겹의 풍부한 앞뒤 맥락이 탈락된다면 소설의 가치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게 아닐까 골몰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개 소설들은 명확한 답을 담고 있지 않다”며 “단일하고, 명쾌한 모두에게 좋은 답 하나는 좀처럼 없다”고 말했다.

끈질김을 요하는 현시대의 과제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후 위기를 꼽았다. 정 작가는 지독하게 더웠던 이번 여름을 언급하며 “강수량이 무섭다”며 “상하수도, 안전장치들을 잘 들여다보면 좋겠는데 그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도외시하는 리더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국가 단위를 넘어 결정권자를 잘 뽑아야 하는 것 같다”며 “시민 사회가 성숙해 가며 기후 위기를 고민하는 리더들이 힘을 얻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작 지원금 혜택 확대되어야”

정 작가는 신인 창작자를 향한 경제적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아 소중하다”며 “창작 지원금 등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수의 도서관은 △독자 △출판사 △작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정 작가는 “도서관이 지금의 두 배 정도로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서 선생님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 기획을 하기 어렵다고 들었다”며 사서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강조했다.

삶의 가운데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는 정 작가는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니 신중하게 집중해서 쓰고 싶은 글을 고르고, 빼기를 잘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면서도 독자를 향해서는 “더하기를 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20대 때 취업과 여러 고민들로 불안해 가능성 가득한 시기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안다”며 “그럼에도 근사하고 아름다운 나이인 만큼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면의 힘”을 강조했다. 사람을 마모시키는,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이 산재한 시대. 정 작가는 “스트레스에 사람이 깎여 나가기 쉽다”며 “깎고 꺾으려는 외부의 힘에 저항해 내면의 힘을 유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면의 힘은 무형의 것에서 온다. 원하는 일을 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식물이나 동물과 교감하는 것. 정해진 방식은 없다. 정 작가는 “자신만의 소중한 경험을 축적해 보이지 않는 갑옷을 얻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