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와 도영 - 2
소설 연재 : 흘러갈 때는 10화
세영 언니는 한나 킴을 ‘수다쟁이’라 칭했다. 나는 침묵을 못 이겨 무어라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내 생각에 우리는 많이 닮았어요.”
생뚱맞은 말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닮았다고요?”
“흐흫, 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한 번 더 만나잖아요, 우리.”
“네, 그렇죠.”
“오늘은 내 술친구 해줘요. 세영에게 부탁했어요. 내가 도영 좋아해서.”
“저를 원래 아세요?”
“알았을까요, 어떨까요? 요즘 시나리오는 써요?”
“아니요. 안 씁니다.”
“잠시 쉬는 건가요? 아니면 완전히 포기?”
“글쎄요, 어떨까요?”
“흐흐흫. 재밌네요. 와인 좋아해요?”
“그럼요.”
“자리를 옮기죠. 와인을 대접할게요.”
한나 킴은 메고 왔던 에코백을 다시 메고 길을 걸었다. 그녀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베니스영화제에 출품했을 적 인터뷰에서도 한나는 말했다. “나는 빠르게 걷는 것과 뛰는 걸 좋아해요. 박동을 느끼면 행복해지더라고요. 영화 작업을 하지 않을 땐 흠뻑 젖을 때까지 뛰는 편이에요.” 와이드 핏 바지에 가려진 그녀의 종아리 근육을 상상했다. 오랜 침묵 후에 터져 나왔던 그 말은 상상 속 종아리 근육이 형체를 분명히 할수록 아리송했다.
“내가 걸음이 좀 빠르죠?”
“죄송해요. 운동을 좀 해야 했는데.”
“다들 인생 속에서 무언갈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죠.”
“... 네.”
“천천히 걸을게요, 같이 가요.”
한나는 어기적거렸다. 나는 그녀가 걸음에서 신경을 떼었으면 했다.
“우리가 왜 닮았죠?”
한나는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볼이 약간 붉어졌을까. 한나는 말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재능들을 잃었어요. 여전히 그들을 잊지 못하고요. 나는 당신과 나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 우리는 달라요.”
“그럼요. 그냥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죠. 불편했다면 사과할게요.”
와인바는 멀지 않았다. 한나는 가게 문을 열고, 내가 들어오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