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자치가 대학을 뜨는구나

■광장

2024-10-07     유성민(물리교육·21)

2024년 9월 30일 민주마루에서, 학생 자치가 대학을 떠났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의 개최정족수 미달로 인한 무산으로 학생 자치는 허망하게 떠나갔다. 학생 자치는 학생회의 정체성이다. 학생 자치는 대학생의 일을 그들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한다는 학생회의 조직 원리를 설명하는 단어다. 학생회 조직은 ‘결정’을 담당하는 의사결정기구와 ‘실천’을 담당하는 집행기구로 나뉜다. 총학생회(총학)의 경우 의사결정기구는 전학대회다. 전학대회가 무산된 것은 학생 자치에서 ‘결정’의 원리가 적출된 현장이다. 이에 우리 대학에서 학생 자치를 떠나보낸 총학 지도부의 ‘무능’과 ‘기만’을 비판한다.

지도부의 ‘무능’은 학생 자치를 망가뜨린 원인이다. 무능의 구체적 실태는 지도부의 설득 능력과 설득 의지의 부족이다. 전학대회의 대의원을 소집하는 인물은 총학생회장이다. 즉 대의원의 수가 부족하여 전학대회가 무산된 사건은 총학생회장이 대의원 소집에 실패한 일이다. 소집은 설득이다. 소집은 대의원에게 전학대회의 참석 가치를 설득하는 일이다. 소집은 대의원에게 전학대회의 개최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이다. 소집은 단과대 학생회장부터 학년별 대표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학대회 대의원의 일정을 한날한시에 맞추기를 설득하는 일이다. 총학생회장은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의 대의원인 단과대·총동아리연합회 대표자에게 단위별 대의원을 모아줄 것을 설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앞의 결과는 전학대회 대의원 소집의 실패뿐이다. 실패의 원인은 총학생회장과 중운위를 비롯한 총학 지도부의 무능이다.

지도부의 ‘기만’은 학생 자치를 망가뜨린 전학대회 현장에서의 태도다. 기만은 전학대회의 무산을 알리는 총학생회장의 발언에서 드러난 태도다. 무산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일사천리 일목요연으로 순행 되는 안내에는 소집 실패에 대한 반성은 없고 핑계만 있었다. 이를테면 대의원의 참석이 저조한 이유는 전학대회 날짜가 미뤄졌기 때문이며 날짜가 미뤄진 이유는 대동제 기획이나 총장임용후보자선거와 관련한 격무 때문이라는 수준 낮은 핑계만이 줄을 이었다. 전학대회의 무산을 예상했었다는 태도 역시 큰 문제다. 무산을 예상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산을 막아야 했다. 무산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산을 예상하고도 가만히 앉아서 기껏 마이크로 준비된 무산 선언 글을 읽는 태도가 비판 대상이다. 총학 지도부의 기만적 태도의 원인은 전학대회 무산의 책임이 지도부가 아닌 대의원의 무관심에 있다는 그들의 착각이다.

제발! 그 건방진 착각을 멈추라. 무산은 명백히 지도부의 탓이다. 학생의 표를 얻고자 노력했던 초심의 간절함은 어디로 갔는가. 과거 학생회장들은 학생총회 성사를 위한 2,500명 소집을 위해 릴레이 2,500배를 진행하기도 했다는데, 배는커녕 대의원에게 하나하나 전화는 돌려 봤는가! 학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현수막이라도 걸어 봤는가! 잊지 마라. 학생이 모여 세운 것이 학생회다. 학생이 직접 뽑은 대표자가 학생회장이다. 학생에게 힘이 있기에 대표자에게 힘이 있다. 그 힘은 정당한 의사결정 즉 숭고한 학생 자치의 원리 아래에서만 실천된다. 학생 자치를 무능과 기만으로 떠나보내지 마라.

당시 소감으로 마무리한다. 전학대회에 대의원 자격으로 참석한 필자는 그만 주저앉았다. 뻔뻔히 무산을 알리는 그 순간 학생 자치는 이곳 민주화의 성지를 떠나갔다. 총학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떠나갔다. 비표를 들어 발언권을 얻을 기회가 떠나갔다. 총학의 지난 학기 농사의 실적과 새 학기의 계획을 확인할 기회가 떠나갔다. 공개적인 묻고 답하기로 안건의 적절성을 검증하고 평가할 기회가 떠나갔다. 학생 자치가 도둑맞은 비참한 현장에서 필자는 황지우의 시 속, 새가 되지 못한 이들처럼 주저앉았다. 총학 지도부의 무능과 기만으로, 학생 자치가 대학을 뜨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