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연결될수록 강하다

■1667호 다시 생각하며

2024-10-07     전대신문

처음 “너 페미냐?”라는 소리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 때, ‘낙태죄’를 주제로 한 토론 수업 시간이었다. 대학 2학년 때는 친구가 흡연자 선배에게 담배가 여자 몸에 얼마나 해로운 줄 아느냐는 훈계를 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흡연하는 여성들이 한두 번씩은 그 비슷한 경험을 했고, 심지어 흡연을 이유로 물리적 폭력을 겪을 뻔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는 안 되겠다 싶었다. 주변 사람들과 인문대 벤치 옆에서 ‘사랑의 맞담배’라는 여성 흡연권 관련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계기였다. 

그때까지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지 않았으나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광주여성민우회라는 여성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3년 동안 활동하면서 온몸으로 느낀 것은 구조적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것이 성폭력 이후에도 피해자를 괴롭히는 주요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최근 알려진 ‘딥페이크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해자들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딥페이크 기술로 지인의 사진, 또는 영상을 합성하는 것을 ‘지인 능욕’이라고 부르며 조롱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주변 사람이 나의 일상 사진으로 성착취물을 만들고 유포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주변의 누구도 믿기 어려워진다. 돈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사고파는 산업구조가 형성되면, 사회적 신뢰는 빠르게 무너진다.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하며 답답한 것은 이런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논의의 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만이 아니다. 작년, 광주여성민우회는 2년간 잘 운영한 디지털성폭력 특화프로그램을 다른 상담소로 이관해야 했다. 여성가족부의 일방적 이관 조치에 항의하려면 지역 상담소들은 KTX 요금 10만원씩을 내고 서울에 가야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1시간 기자회견을 위해 아침에 기차를 타고 가서 돌아오면 저녁이었다. 중앙부처나 국회와 싸우기에, 여기는 너무 광주인 것이다.

지역, 여성, 운동. 셋 중 하나도 쉽지 않은데, 이 모든 열악한 여건 속에서 활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최근에는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 더욱 그렇다. 개인이 성폭력 사건의 재판을 방청하고 그 기록을 남기고, SNS를 중심으로 시위나 집회를 조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때로 단체의 지속가능성에 회의 섞인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전과는 페미니즘 의제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도 크게 달라진 것 같단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여아선별 낙태가 이루어지던 시절에 태어나, ‘너 페미니스트냐’라는 공격을 받고 자라,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면서도 일상에서 여전히 크고 작은 차별을 목격할 때마다 세대와 지역 등을 넘어 여전히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느낀다. 그 연결의 방식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그것이 때로는 답답하고 더디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끝내 연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니까. 

수수(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