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 제약, 자유의 본질이기도
■1667호 사설
시장 중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사익, 자기만족 극대화가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기후 위기나 부의 양극화와 같은 문제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보면 우리가 사익 극대화를 당연시하며 우리 사회를 치유할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실망할 때가 있다. 자유로운 사익 극대화와 공공선이 어떻게 조율되어야 하는지, 자유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사회과학 실험이 떠오른다. 실험 관리자가 한 사람에게 1만 원을 주면 그 사람은 1만원 중 일부를 상대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를 자기가 갖게 된다. 이때 상대가 나누어 받을 금액에 불만을 갖고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관리자에게 반납하게 된다. 독자가 1만원을 받았다면 얼마를 상대에게 줄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필자가 이 질문을 했을 때 주변인 대다수는 5,000원 또는 그 이상을 상대방에게 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1,000원이든 그보다 작은 돈이든 상대에게 주면 상대방도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좋으니 이를 받아들일 듯싶은데 실상 우리 주변 사람들은 공평하게 나누는 경향을 보인다. 자유롭게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이외에도 공정함, 신뢰 같은 가치들이 고려되는 것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위는 시장이 발달한 사회보다는 시장기능을 경험하지 못한 원시적 사회에서 더 관찰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장은 단순히 사익 극대화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듯싶다. 실제 많은 학자는 시장을 통해 사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핵심 이유는 협력을 가능케 하는 신뢰라 한다. 이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지 않고 공동선과 윤리가 부여하는 제약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을 뜻한다. 진정한 자유는 제약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자유에 대한 제약이 외부에서 가해진다면 그것은 억압이며, 근대 이후의 발전은 억압을 해체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러나 공공선, 옳고 그름의 판단에 따른 자율적인 제약이 억압을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발전은 가능했다. 자율적인 제약이 자유의 본질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