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청년의 눈빛으로

2024-12-22     김정민 기자

우리는 정치를 혐오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추석 싸움을 구글에 검색하면 ‘추석 정치 싸움’이 추천 검색어에 뜬다. 추석에 어른들은 만나기만 하면 정치 이야기를 꺼내고 이는 대개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하고 끝난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부모님들에게 들은 정치 이야기를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서로 의견이 달라 싸운 적이 있다. 그렇게 싸운 후로는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싸운다’는 것을 학습하고 정치 이야기 꺼내는 것을 꺼리게 됐다. 이처럼 한국에서 정치 이야기는 싸움과 같은 말이 된 지 오래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피하기 십상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갈등은 ‘정당일체감’이라는 개념과 관련된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을 말한다. 함현호 한양대 교수(정책학)에 따르면 정당일체감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정당일체감이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호감과 신뢰를,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는 경향인 ‘정서적 양극화’로 발전할 때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정서적 양극화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위에서 서술했듯, 추석에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끼리 지지하는 정치인을 이야기하다가, 뉴스를 보다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 다투는 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다툼이 감정의 골을 생기게 하고, 그런 과정의 반복이 ‘정치적 이야기를 하면 분란이 일어난다’는 인식을 생기게 했다. 이런 인식은 어느새 민주화의 꽃이자 불씨인 학생들에게까지 퍼졌다.

이는 큰 문제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발전과 개혁은 학생들의 발걸음에서 시작되었는데 학생들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피하게 되면 사회는 멈춰버리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정치적 이야기를 통한 분란은 문제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미디어의 편향성, 당파적 배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지 정치적 이야기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은 아니다.

함 교수의 말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서적 양극화로 발전된 정당일체감이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감정적인 판단을 불러오는 것이지, 집단을 하나로 묶어 공동선을 실현하는 정당일체감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치적 대화와 감정적 비난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제도이다. 그 제도를 이용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침묵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를 위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제는 목소리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