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품으로 고통과 상처 마주하는 용기 배워

한강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2024-12-22     정리 구민서 이지연 기자

<전대신문>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며 우리 대학 학생들이 한강 작가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모았다. 4명의 학내 구성원이 전하는 편지를 싣는다.

 

한 명의 독자로서 

한강 작가님, 먼저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은 친구의 추천으로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알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인상 깊은 문학작품에 대해 발표를 할 때 한강 작가님의 책을 발표했었는데 이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고() 문재학군의 어머니 김길자씨가 “책 한 권으로 5ㆍ18민주화운동(5ㆍ18)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저 또 한도 한강 작가님의 글로 5ㆍ18이 세계에 알려졌음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5ㆍ18로 인한 상처를 가감 없이 풀어낸 점과 그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님의 섬세한 태도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와 치유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잘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끔찍한 역사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살아남음에 미안함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들이 섬세한 문체로 그러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 한강 작가님이 쓰신 여러 글을 읽으면서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피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 책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문학이 해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기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깊이 있는 사유와 따뜻한 언어가 세상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그야말로 한국 문학계에 큰 획을 긋는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창작 여정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세은(예술대학원 석사과정)

 

남겨진 사람의 아픔에 대해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한 명의 독자로서, 우연한 기회로 축하 편지를 남깁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작가님의 작품을 시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사실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빌리러 간 도서관에 해당 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빌리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시’라는 장르 자체가 저에게는 크게 와닿거나, 울림을 주었던 경험이 전무 했는데 사실 작가님의 책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글의 깊이나 의미보다는 그냥 그 느낌만을 따라가며 읽었습니다. 

이렇게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한 후, 한강 작가님의 문학 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광주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보게 되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광주에 사는 시민으로서 5ㆍ18에 대해 자세히 알고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안타까움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저에게 그런 깨달음을 준 작품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그렇다면 남겨진 나도 실컷 아파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눈물짓게 되던 책입니다. 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생각에 잠기고는 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나서 저는 드러나는 사실뿐만이 아닌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보는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제 상처를 마주하는 법도,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마주하게 된 것들은 때로는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더 나은 존재가 되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시상식을 시청하면서 자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구민주(기계공학ㆍ23)

 

상실 위에 자란 잡초 

한강 작가님. 저는 한 명의 독자입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사실 제 정체가 아닙니다. 저의 이름과 대학, 친구와 취미는 저를 설명할 수 있어도 본질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님에게 낯선 이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미리 양해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것들이 낯섭니다. 올바른 젓가락질이 낯섭니다. 걷는 닭의 앞뒤로 흔들리는 모가지가 낯섭니다. 제 전공임에도, 약물이 표적 단백질로 전달되는 원리가 낯섭니다. 그중 가장 낯선 것은 사람의 눈입니다. 눈은 어째서 엑스선을 보도록 진화하지 않았을까요? 우스운 상상입니다. 가끔 사람 사이의 거리가 활자의 공간보다 넓게 느껴집니다. 가끔 책을 읽어야 외로움이 덜어집니다. 저는 부적응 기질이 있는 괴짜입니다. 이제부터 괴짜의 넋두리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작가님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을 통과하며 발견되는 생의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존재의 상실을 말입니다. 저는 치와와를 키웠습니다. 이름은 똠삐입니다. “똠”하고 부를 때 공기가 입안에 머물다 “삐”하고 나가는 소리가 재미있었습니다. 14년 동안 즐거운 기억이 가득합니다. 그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슬프고 괴롭습니다만, 추억과 반성, 성장의 이름으로 나 자신이 변했다고 믿어왔습니다. 덜 고통스럽다고. 작가님의 책은 저를 다시 고통의 본질로 데려갑니다. 저는 고통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고통에서 파생된 현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조금 밉습니다. 고통을 직면하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똠삐는 우리 집 텃밭에 잠들어 있습니다. 똠삐의 그림이 그려진 작은 돌이 비석을 대신하여 쌓여 있습니다. 수목장을 시도했지만 묘목은 겨울을 견디지 못해 죽었고, 지금은 잔디와 꽃만 남았습니다. 저는 비바람에 쓰러진 비석을 바로 세우고 잡초에 물을 줍니다. 비록 고통은 불멸이나, 생명을 가꾸려는 나의 행위도 역시 고통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고통의 부재는 아름답지 않고, 고통은 끝이 아니라 지속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긍정하고 싶습니다.
정성보(약학ㆍ20) 

 

완전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단단할수록 쉽게 깨진다.” 나는 내 삶을 지탱하고자 이 문장을 한 손에 쥐고 삽니다. 처음 이 문장을 손에 쥔 날과 한강 작가를 만난 날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채식을 했습니다. 생명의 죽음을 목격했기에 ‘우리의 관계는 틀렸’기에, 모르는 척 있을 순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념만을 지각하기에 내가 원하지 않는 외부 자극은 적절히 차단된다고 합니다. 그 무뎌진 촉수를 다시 예민하게 만드는 일은 꽤나 고통스러웠어요. 식탁에서 죽은 생명들을 마주하는 일은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날 초라한 식판을 마주하느라 괴로웠습니다. 솔직히는요.

그즈음 우연히 <채식주의자>를 읽었습니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였죠. 그러나 실수였을까요. 책은 그야말로 난해하고 잔혹했습니다.

나는 최근 작가의 노벨 강연을 보고서야 이해했습니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주인공 영혜의 마음이 곧잘 이해되었습니다. 나 또한 그 폭력으로부터 완전 결백한 존재가 되고 싶었으며, 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나의 마음은 점점 생명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요. 어쩌면 이름 모를 생명을 살리려는 동안 내 안의 속사람은 죽어갔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끌어안지 못했던 탓이겠지요.

그때 내 아픔을 묵묵히 들어주던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주 단단한 기둥이 바닥에 떨어진다면 그 기둥은 어떻게 될까? 나는 아주 단단하니까 깨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단할수록 쉽게 깨진다더군요.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해 지난 이제는 그 말을 조금 알 듯합니다. 여전히 불완전한 나를, 그런 나를 품지 못하는 나를 봅니다. 그래도 덜 괴로운 걸 보니 조금은 무른 기둥이 되었나 봅니다. 나는 하루에 하루만큼 이렇게 성장해 가고 싶습니다.
이정하(사회ㆍ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