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는 권력의 문제다

■줄탁

2024-12-22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

내년부터 학교 수업에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교육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다. 새로운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검증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반대의 핵심이다. 그런데 논쟁 양상을 보면 근본적인 반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이다.

몇 년 전부터 리터러시와 관련된 논의가 많아졌다. 논의의 중심에는 Z세대의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생각이 있다. 이 관점에서 디지털 기술은 문해력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전통적 미디어인 책과 디지털 미디어인 스마트폰을 비교해보자. 책은 순서가 명확한 선형적(linear)인 매체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독자는 책을 첫 번째 쪽부터 순서대로 읽는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을 때 순서는 명확하지 않다.

책과 디지털 미디어의 또 다른 차이는 형식의 차이다. 책은 문자 중심의 매체다. 그런데 디지털 세계의 콘텐츠는 이미지와 영상의 비중이 높다. 문자는 이미지에 비해 추상적 성격이 강해서 독자의 해석과 관여를 더 많이 요구한다. 반면 이미지나 영상은 감각적이고 구체적이다. 물론 기호와 상징을 다룸으로써 추상화된 차원의 해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문자보다 이미지와 영상이 더 직관적이다.

사람들은 책보다 디지털 콘텐츠에 훨씬 쉽게 접근한다. 매체가 메시지에 영향을 준다는 미디어학자 맥루한(Marshall Macluhan)의 이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새로운 반응 양식을 조직한다는 것을 일상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이 정보의 습득과 교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 리터러시의 하락을 의미하는가?

며칠 전 이 주제를 가지고 Z세대 당사자인 고등학생들과 토론했다. 주장 중에는 ‘우리가 어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자신(학생)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도발적인 논리가 있었다. 문해력이 특정 세대의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는 문자 중심, 성인(특정 세대) 중심의 문해력을 정상으로 보고 그 범위에서 벗어난 논리와 해석을 배제하는 리터러시 논의의 권력적 속성을 보여준다.

디지털 매체에서도 수많은 유용한 정보가 유통된다.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가 사용자의 집중력을 파괴하고, 양질의 정보 전달에 실패하는 데 있지 않다. 이는 기술이 사용자를 일방적으로 제약한다는 단순한 기술결정론적 사고다. 진짜 문제는 같은 미디어를 사용하더라도 매체가 사람에 따라 다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집중력과 문해력을 앗아가는 디지털 미디어가 누군가에게는 양질의 정보를 획득하는 수단이 된다. 이는 단지 미디어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권력의 문제다.

문명훈(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