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낮은 곳에서 철학하겠다”

대학 교수이자 철학자로 20년 보낸 김상봉 철학과 교수

2025-02-25     박소희 객원기자

퇴임 후 칸트 3대 비판서 번역·제주4·3 연구할 것
더 많은 가르침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남기도

“학생들에게 조금 더 좋은 선생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대학 교수이자 철학자로서 20년을 보낸 김상봉 철학과 교수가 퇴임 소감을 전했다.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지금보다 모자란 것이 많았다”며 “20년간 스스로 발전하며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이 더 많아졌는데 퇴임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5년 7월 특채로 임용됐다. 당시 철학과는 교수 정원이 가득 찬 상태였으나 철학 연구 및 교육 활성화를 위해 새 연구자를 모셔 오고자 했다. 당시 학과장이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던 그를 적임자로 판단한 이후 철학과 모든 교수가 임용에 찬성하며 이례적인 특채 임용이 이루어졌다. 그는 “훌륭한 학자와 스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부임 후 5·18민주화운동(5·18) 세미나에서의 첫 번째 강연은 김 교수가 본격적으로 5·18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전남대에 온 것이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5·18기념재단 이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작년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 진행한 마지막 강의 또한 5·18 강의였다. 5·18 30주년에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독일어 가사를 5·18 정신을 담은 우리말 가사로 옮겼다. 그는 “광주로 오지 않았다면 5·18은 책을 통해 만난 역사였을 것”이라며 “광주에 살며 살아있는 역사로 만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1년 ‘그럼 삼성과 싸워라’ △2017년 학벌주의 관행을 지적하는 ‘왜 서울대를 폐지해야 하는가?’ △2018년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학내 토크 콘서트 등 여러 학내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2011년 5·18광장에서 진행된 야외 강연은 200여명의 학생이 모이며 특히 주목받았다.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묻자 김 교수는 “세계의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현실과 가상현실의 차이는 고통에 있다. 즉 가상적 존재와 현실적 존재로 구분되는 존재의 다양성은 고통의 다양성에 존립한다. 김 교수는 “전체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때 비로소 전체와 하나 되며 진정 자유로운 주체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연구, 강연 등 모든 것은 전체로 대변되는 인간적인 삶을 향하는 것이며, 이는 곧 스스로가 진정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길인 것이다.

김 교수는 “좋은 제자들을 많이 만나 여러모로 생산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섯 명의 박사를 길러냈다”며 “제자들의 뚜렷한 개성과 탁월함 덕에 한국칸트학회에서 ‘전남학파’라고 불리곤 한다”고 말했다.

퇴임 이후 김 교수는 칸트의 3대 비판서를 번역하고, 제주4·3을 연구할 계획이다. 그는 제주4·3에 대해 “한국 민중항쟁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며 해명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비극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비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 교수의 또 다른 이름인 ‘거리의 철학자’. 별명이 과분하다지만 그에게 철학은 자신의 삶 그 자체다. 그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낮은 곳에서 철학하려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향해서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대가 ‘마음의 고향’이라는 김 교수. 그는 퇴임 소감으로 짧고 굵은 한마디를 전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