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심정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 기자의 좌충우돌 30일 도파민 디톡스 리뷰
하루에 유튜브·인스타 5시간 사용
고등학생 때 ‘중독’ 진단받아
도파민 없으니 절망감 느껴
다큐 ‘동물의 왕국’ 너무 재밌어
‘트렌드 코리아 2024’는 올해 10개의 소비 흐름 키워드 중 하나로 ‘도파밍’을 선정했다. 도파밍은 도파민(dopamine)과 파밍(farming)을 결합한 말로,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경험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모으려는 요즘 사람들의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도파밍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너무 잦은 사용과 새벽까지 이어진 사용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기도 한다. 도파민을 유발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자극과 중독성에서 벗어나 보고자 이번 기획 ‘이 기자의 좌충우돌 30일 도파민 디톡스 리뷰’를 준비했다.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18일까지 총 30일간 중독을 유발하는 디지털 플랫폼 사용을 금지해 보았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스레드 △웹툰 △게임 등의 앱 사용을 제한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작성했다.
한 달? 까짓거 해봅시다!
<전대신문> 기획으로 시작한 도파민 디톡스지만, 평소에도 디지털을 덜 쓰자는 생각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했던 스마트폰 중독 검사 결과, 중독 수준에 해당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스마트폰에 몰입했으며 스마트폰이 유일한 취미 활동이었다. 이후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심각성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건 대학생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래 처음 기획을 구상했을 때는 일주일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주일은 짧다는 피드백이 있었고 45일은 어떠냐는 선배의 말에 위협을 느껴 “한 달 좋아요!” “네, 까짓거 해봅시다”라고 대답했다.
지난달 16일 저녁 11시 50분 도파민 디톡스 기획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엄청난 회의감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없었다. 밤 11시 알고리즘에 추천된 유튜버 ‘지새기’의 '여자들 계급 정리' 영상은 도파민을 자극했다. 이 유튜버를 이제야 안 것을 후회하며 ‘모태솔로 연애 썰’과 ‘친구 0명 아싸된 썰’을 보았다. ‘엘리트 찐따의 인생 썰’ 영상도 보려 했으나, 17일 자정이 다가와 시청을 중단했다.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기획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볼 것을 다짐하며 도파민 디톡스를 시작했다.
첫날 느낀 감정은 '절망·공허·분노'
기획 첫날,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디지털 플랫폼의 공백을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기상 후엔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봐도 할 게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뉴스를 틀었다. ‘왜 이리 재미없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가 떨어진 탓에 스쿼트를 동시에 해보았지만, 무료함이 들었다. 그 무엇도 스마트폰의 재미와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평소에 당연히 해왔던 것들이 제한되자 절망과 무료함, 분노가 찾아왔다. 평소 유튜브나 웹툰을 보면서 식사를 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오롯이 밥만 먹게 되었다. 눈에 비눗물이 들어가더라도 유튜브를 보면서 샤워하던 때와 달리, 머리에 떨어지는 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없이 길을 걸을 땐 따분함을 느꼈다. 당연시했던 것들이 사라지자 새로운 환경에 놓인 것 같았다. 무료하고 따분한 삶에서 유일한 도피처는 제1학생마루에 있는 전대신문에 가는 것이었다. 개강하기 전까지 할 일이 있든 없든 대부분의 날을 전대신문에서 보냈다. 기사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료함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대신문에 오면 그나마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기에 적막함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순간뿐,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은 다시 시작됐다.
도파민 하나 때문에 괜스레 화가 나는 일도 있었다. SNS를 안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하루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10개 이상은 올리던 애가 갑자기 사라져 의아했다”며 “도파민 디톡스 해보니까 어떠냐?”고 물었다. 순간 욱한 마음이 들었다. ‘어떠냐고? 어떠냐고? 네가 직접 해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음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여유가 생기지만 너무 건전해서…. 음…”. 울컥하는 마음에 “말로 표현 못 하겠으니 네가 직접 해봐!”라고 친구에게 성질을 냈다.
10일째, 공지·답장 확인 못 해 불편
SNS 없이는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주식 동아리 ‘전대주주’의 OT 정보를 확인하려 했으나 SNS를 이용할 수 없어 정보 확인이 불가능했다. 동아리 회장에게 기획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직접 일정에 대해 말해주었다. 또한,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에도 개강총회에 관련된 글은 인스타 스토리를 봐달라는 회장의 말에 따로 그와 연락하여 정보를 받아야 했다.
SNS를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은 일상에서 소통과 정보를 얻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동시에 빠져나오기 어려운 도파민의 장이기도 하다. 에브리타임에서 동아리에 대한 정보만 찾으려 했는데 쏟아지는 정보에 재미를 느껴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허비한 적이 있다. 당시 완벽하게 기획을 소화하고 있었으나 다시 도파민에 빠지게 된 것 같아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소통이 되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전대신문> 기사 작성 당시 총 3명에게 인스타를 통해 연락해야 했는데 노트북으로 일일이 연락이 왔는지 확인해야 하고 실시간 소통이 안 됐으며 섭외가 지연되는 등 불편함을 느꼈다. 동아리 개강총회 당시에도 다들 인스타 맞팔로우를 할 때, 필자는 인스타가 없어 동기들의 연락처를 받고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하기도 했다.
15일째, 자주 쓰는 쇼핑 앱을 지웠다
기획을 진행하다 추가로 △당근 △쿠팡 △에이블리 앱 등 쇼핑 앱을 스마트폰에서 제거하고 필요할 시 태블릿으로 구매하도록 제한했다. 도파민을 찾기 위해 심심하면 살 것이 없음에도 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한번은 드라이기를 사기 위해 들어간 쿠팡에서 실시간 라이브 숏폼 영상을 넘기다 정신 차려보니 20분이 지나 있었다.
교양으로 보던 ‘동물의 왕국’도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어 제한하였다. 디톡스를 시작한 김에 저자극의 영상을 시청하고자 ‘교양’을 보았다. 그러나 ‘알프스 검독수리의 모험’이라는 회차를 본 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검독수리가 답답하고 빨리 전개됐으면 하는 마음에 다리를 떨면서 보았고 결말이 궁금해 다섯 편을 보았기 때문이다. 챌린지 시작 후 평소 취침 시간은 12시였지만 이날은 새벽 3시에 자버렸다. 이 외에도 교양 △극한직업 △이제 만나러 갑니다 △EBS 다큐를 제한했다. 쇼핑 앱과 영상물을 제한한 뒤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30일째, 스마트폰 사용 시간 하루 평균 3시간 40분 줄어
성공적으로 도파민 디톡스 한 달 리뷰를 끝맺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디톡스 시작 전인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간 기자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총 53시간 31분이었다. 하루 평균 약 7시간 38분으로 대한민국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량보다 약 2시간 20분 정도 더 많았다. 가장 많이 사용한 디지털 플랫폼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순으로 각각 하루 평균 약 3시간 30분, 1시간 35분, 1시간 10분 사용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날의 경우 10시간 46분이었으며 △인스타그램 4시간 49분 △유튜브 2시간 26분 △카카오특 1시간 35분 및 △트위터 △에브리타임 △크롬 등 9시간 29분을 사용했다.
기획 한 달 동안 스마트폰 사용량은 7,171분으로 하루 평균 약 3시간 59분이었다. 도전 전인 7시간 38분과 비교해 평균 3시간 39분이 감소했다. 시간이 감소한 만큼 다양한 것들로 시간을 채워갈 수 있었다. 도파민 디톡스 덕에 지옥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기도 했다. 2월 24일 월요일부터 28일 금요일 오전까지 5일 동안 △광주시 내 노숙인 현장 르포 △사회학과 학생연합자치단체 김하진 편집장 인터뷰 △외국인 유학생 드렐린씨 인터뷰 △청년의 눈빛으로(칼럼) 총 4개의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평소 기사 1개로도 마감날까지 밤을 새운 적 있던 기자였기에 막막했고 도저히 못 할 것 같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기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계속 기사를 쓰고 잠깐 쉬고를 반복하며 진도가 빠르게 나갔고 스트레스를 비교적 덜 받으며 작성할 수 있었다.
기획 덕분에 새롭게 얻게 된 한 달
기획을 시작한 뒤로 스마트폰 외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뉴스를 통해 트럼프 관세에 대한 시사와 SM, 아이브 신입 그룹 데뷔 등 이슈를 알 수 있었다. 잠 못 드는 날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으며, 삶의 여유가 생겨 스스로를 돌보거나 청소에 더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또한 화장실에 책을 두고 볼 정도로 독서가 취미가 되었다. 기획을 진행하는 한 달 동안 △<채식주의자> △<싸우는 공룡 대백과> △<규방철학> △<대도시의 사랑법>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 사용과 맞바꾼 결과였다.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는 한 달이 걸린다는 말이 있듯, 시작이 힘들지라도 참고 견디면 더 나아진 본인을 만날 수 있다. 시작 당시에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삶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기획이 끝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실시간 소통을 위해 켜놓은 스마트폰 알림음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침대 머리맡과 책가방에는 항상 책이 구비되어 있다. 심지어는 샤워 중 스마트폰 시청용으로 사용한 보관함도 버렸다. 줏대 있는 삶을 꾸리는 현재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처음은 힘들 수 있지만 기자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독자들에게 ‘도파민 디톡스’를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