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공동체 정신 깃든 적십자병원 11년 만에 개방

구 광주적십자병원 개방 기념 전시 르포

2025-05-11     김청우 기자

5·18 당시 응급실도 볼 수 있어
당시 시신 영안실에 전부 안치 못해

11년 만에 개방한 구 광주적십자병원의 모습.

구 광주적십자병원(병원)이 지난 3일 시민들에게 전시 목적으로 개방됐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2014년 이후로 11년 만이다. 이 병원은 5·18민중항쟁(5·18) 당시 부상자들을 신속히 치료하여 귀중한 목숨들을 구했다. 피가 부족했던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동참한 공동체 정신이 빛을 발한 장소다. 병원은 오는 31일까지 임시 개방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다. 개방 구간은 관란객의 안전과 관람 효율을 고려해 △전면 주차장 △응급실 △1층 복도 △중앙현관 △뒷마당이다.

“몸은 더럽혀졌을지 몰라도 피만큼은 깨끗하다”

오월 안내 해설가가 시민들에게 해설하는 모습.

11년 만에 다시 바라본 병원은 그동안 방치되어 당일 우중충한 하늘처럼 얼룩져 있었다. 병원 주차장에 자리 잡은 천막에는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명록과 전시 안내문이 배치돼 있었다. 개방한 첫 날부터 많은 비가 왔지만 방명록을 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간 후였다.

‘응급실’이 적힌 병원 입구를 들어가면 문 앞에 오월 안내 해설사가 있다. 해설사는 1시 30분부터 5시까지 병원에 상주하며 5·18과 병원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설사는 5·18 당시에 많은 시민들이 헌혈에 동참했는데, 그중 유흥가의 여인들도 헌혈을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인들이 “자신들의 몸은 더럽혀졌을지 몰라도 피는 깨끗하다”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항쟁 기간에는 수많은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몰려왔다. 타박상이나 골절부터 심하게는 총상을 입은 환자들도 있었다. 점차 환자가 늘어나며 피가 부족해지자 병원 차량이 돌아다니며 헌혈을 호소하였다. 그 후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몰려와 헌혈하였다.

모든 게 11년 전에 멈춰 있어

병원 내에는 병상이 7개뿐인 작은 응급실이 있다. 여기서 5·18 때 근무했던 박미애씨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당시 수간호사로 근무했던 박씨는 파도처럼 밀려왔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사람이 끝없이 들어왔다, 무서웠다”고 당시를 설명한다. 수많은 부상자들이 이 조그마한 방안에 밀려와 치료를 받았을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방을 나와 중앙 복도로 향하면 곳곳에 열려있는 방들이 있다. 서남대병원으로 운영하던 2013년 당시의 진료실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11년 전 달력과 일지들, 모든 게 그대로 멈춰버린 이곳을 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1965년 처음 문을 열어 1996년 서남대병원으로 인수돼 운영됐지만 경영 악화로 지난 2014년 문을 닫았다.

복도 끝에 도착하면 5·18 당시 병원의 사진이 전시된 중앙현관이 나온다. 사진들은 1980년 항쟁 기간에 중앙일보 이창성 사진기자가 촬영한 헌혈 및 부상자 치료의 사진들이다. 북적거리는 사진을 보면 당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헌혈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지 알 수 있다.

병원 존재 자체를 모르기도 해

가상의 마트로 바뀐 병원을 보는 시민의 모습

중앙현관 바로 뒤 야외마당으로 가는 통로가 있다.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 여러 개의 사진이 붙여있는 구조물이 있다. 광주시는 병원이 향후 어떤 식으로 사용되면 좋을지 시민들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병원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면 좋을지 묻는 질문에 광주에 거주하는 ㄱ씨는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 마트 같은 건 어떤가?”하며 병원이 마트나 옷가게로 바뀌는 걸 선호했다. 이밖에도 △철거 △예술 공간 △5·18기록관 △현상유지 △무료급식소 △여행자 센터 등 거주민들의 재밌는 아이디어들을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병원 개방 전에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거주민들도 있었다. 길을 가다 병원이 열린 걸 보고 우연히 찾았다는 ㄴ씨는 “병원과 관련된 일을 아예 몰랐다”며 “중요한 5·18 사적지인 것은 와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마당 앞까지 이어진 안치

전시를 다 보고 나가는 길에 만난 한 관계자는 “저기 있는 게 영안실입니다”고 말을 걸어왔다. 그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모를 정도로 작은 건물이다. 그는 “5·18 때 시신을 영안실 안에 다 안치할 수 없어 마당 앞까지 시신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서있는 곳이 꽤나 엄숙한 자리임을 느꼈다. 많은 수의 사망자가 5·18에서 발생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관계자는 영안실 자리에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담은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개방행사 종료 후 관람객 반응과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유휴공간의 지속 활용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단체·전문가·시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관련 건물과 부지 전체에 대한 중·장기 활용계획을 마련하고, 국비 확보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