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빌려 드립니다

2025-06-01     김유로(미술·25)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은 정말 ‘우리의 것’일까?

하루는 빠르게 지나가는데, 끝에 남는 건 별로 없다. 강의는 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과제는 있지만 손에 잘 안 잡힌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지만, 쉰 것 같진 않고, 놀았지만 뭔가 허전하다.

시간은 분명 지나가고 있지만, 그 시간이 나를 통과한 것인지, 내가 그 시간을 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착각이 든다. 나는 내 시간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설계 안에서 정해진 하루를 이수 중인 건 아닐까?

영화 <인 타임>은 이 질문에 노골적인 방식으로 대답한다. 이 세계에서 시간은 곧 화폐다. 사람들은 스물다섯이 되면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늙지 않고, 그 순간부터 남은 수명이 몸에 숫자로 표시된다. 식사를 하거나, 교통을 이용하거나, 잠을 자는 데에도 시간을 지불한다.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그대로 사망한다.

시간은 곧 생존의 총량이자, 가장 절대적인 자산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불균형하게 분배된다. 부자들은 수백 년을 살며 시간을 축적하고, 빈자들은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지 걱정하며 매일의 시간을 노동으로 번다.

주인공 윌은 빈민가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막대한 시간을 얻게 되며, 그는 시간의 불평등을 설계한 자들 - 곧 ‘시간을 소유한 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 세계에서 시간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윌은 그 운명에 질문을 던진다. 왜 어떤 이들은 세기를 살고, 어떤 이들은 하루를 살지 못하는가? 시간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그의 도전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존재의 평등에 대한 요구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숨 쉴 권리, 시간을 가질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문득, 지금의 내 일상이 겹쳐진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몇 시간을 흘려보내고, 할 일은 있지만 별다른 위기감도 없이 다음날로 미룬다. 바쁜 것도, 한가한 것도 아닌, 애매한 하루들. 그러면서도 자주 말하게 된다. “시간이 없어.”

이 영화는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은 단순한 바쁨의 표현이 아니라, 무언가를 빼앗긴 채 살아간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고.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 날들이 반복된다면, 그건 우리가 시간을 잃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가지는 무게는 다르다. 어떤 시간은 희망이고, 어떤 시간은 생계며, 어떤 시간은 벌금이다. 우리의 시간은 정말 우리 것이 맞는가? 혹시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시간을 대신 지불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인 타임>은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와 생존 조건을 은유하는 일종의 ‘시간 철학서’이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숨 쉰다는 것이 누구의 허락 아래 존재하는지를 묻는 사회적 우화다.

삶은 연장이 아니라 존재다. 당신이 지금 살아내는 이 하루가, 그저 시스템이 부여한 ‘시간 연장’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시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