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 추상주의에 빠져보세요

ACC 10주년 기획 전시 ‘뉴욕의 거장들’

2025-09-01     김민성 박수빈 기자

국내 최초 추상주의 예술 전시회
AI 활용한 거장들과의 인터뷰까지

지난달 22일 점심시간.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창조원 1층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10주년을 맞아 ACC가 국내 최초로 기획한 추상주의 예술 전시 ‘뉴욕의 거장들’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관람객들은 전시관에 들어갔고, 관람을 끝낸 사람들은 전시장 바로 옆 마련된 아트숍에서 기념품을 구경하고 있었다. 광산구에서 온 관람객 윤현정(26)씨는 “SNS에서 전시소식을 알게 되었다”며 “미국에 가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을 가까운 우리 지역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세계대전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추상주의 예술

지난달 22일 관람객들이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2천억원의 가치를 지닌 잭슨 폴록의 ‘수평적 구조’ 등 뉴욕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 21명의 작품 36점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입장하자마자 처음 보이는 작품은 마크 로스코의 ‘십자가’ 다. 작품 속 흉측한 모습으로 못 박혀있는 팔의 모습에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1930년대 말 유대인 대학살의 공포를 암시하는 작품으로 그의 후기 작품과 비교했을 때 보다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주제와 종교적인 이미지를 다루었다.

리 크레이스너의 작품들 또한 비슷했다. 그의 1938년 작품과 1948년 작품을 비교해서 감상해보면 차이가 느껴진다. 1948년 작품을 보면 격자무늬와 사각 틀의 조화로운 구조를 감상할 수 있는데, 평평한 수평 표면에서 여러 차례 재료를 바르거나 붓고 걷어내는 과정을 반복해 원하는 효과가 나올 때까지 화면을 구축해 나간 결과물이다. 전시 초입부에는 추상주의 이전과 추상주의 유행 후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관람할 수 있다.

둘러보다 보면 별도의 어두운 공간이 나오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대망의 ‘수평적 구조’를 볼 수 있다. 사진 찍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가 하면 작품 앞 의자에 앉아서 천천히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당 작품은 붓질 대신 물감을 뿌리거나 붓는 이른바 ‘액션 페인팅’의 대표작이다. 휘몰아치는 선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대전에서 방문한 류수현(29)씨는 “이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붓터치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잭슨 폴록이 그려 상징적인 작품이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추상주의와 색면회화의 공존

관람장 깊숙이 들어가면 색면회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의 예술가들은 색채의 원초적 특성을 과감하게 수용했다. 또한 이 시대의 작품들은 건축적 형태와 장소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기하학적 선 형태가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미리엄 샤피로의 ‘팜파르’다. 고전 추상주의 작품에 비해 화려해 보였다. 샤피로는 색채 자체가 갖는 감각적 힘과 표면 처리의 물리적 특성에 주목했다. 제스처를 통해 감정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이를 일부러 지우거나 매끄럽게 처리해서 회화의 흔적을 통제하려는 시도도 했다. 이를 통해 표현과 절제, 충동과 계산 사이의 긴장을 강조했다.

“먼저 나만의 관점에서 감상해보길 추천”

작품 해설을 담당하는 도슨트는 “현대 예술에 한 가지 정답만 존재하지 않는다”며 “누군가가 풀이해 놓은 답을 쫓기만 한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작품 감상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 먼저 오로지 나만의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기자도 직접 작품 해설 듣기 전에 그림부터 먼저 감상했는데 스스로의 해석과 실제 의도를 비교해가며 관람하니까 더욱 재미있었다.

또 전시장 마지막 무렵에는 AI를 활용한 거장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6분 남짓한 영상 속에는 그들이 추구했던 미적 가치관을 보다 쉽게 정리해 놓았다. 작품을 다 감상했다면 영상을 통해 관람한 작품의 특징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