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그 힙의 혁명

1677호 줄탁

2025-09-01     한지혜(신문방송학과 석사수료)

이번 칼럼의 제목은 최근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예소연의 단편 『그 개의 혁명』에서 빌려왔다. 암에 걸린 아버지와 간병하는 딸, 그리고 유쾌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으로, 예소연은 92년생으로서 이상문학상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더구나 이미 출간된 작품이 대상을 받은 것은 47년 역사의 이상문학상에서 관행을 깨는 사건이었다. 주관사로 새롭게 나선 다산북스는 수상작 해설을 책 마지막에 배치하고 수상자와 심사위원의 대담을 먼저 실었다. 이는 새로운 독자층을 겨냥한 파격적 운영 방식이자 출판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젊은 세대의 작가 수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출판계의 전략은 최근 출판 현장에 불고 있는 ‘텍스트 힙(Text Hip)’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용어는 단순히 멋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감각이자 정체성을 형성하는 힘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출판 시장은 ‘힙하다’는 감각을 매개로 한 세대 교체를 실험해왔다. 유명 배우의 한마디가 책을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거나, 한동안 잊혔던 작품이 새삼 독자들에게 발굴되는 현상은 이제 놀랍지 않다. 양귀자의 『모순』, 정대건의 『급류』,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이런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았고, 고선경 시인의 시집은 출간 직후 1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시집의 위상을 새롭게 쓰기도 했다. 독서는 이제 교양 축적의 차원을 넘어 또래와 연결되고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한 것은 뉴미디어다. 북튜브(BookTube), 북톡(BookTok), 그리고 X(구 트위터)는 젊은 세대의 독서 경험을 공유하고 확장시키는 중심 무대가 되었다. 독자들은 이곳에서 책을 발견하고 즉시 구매·공유하며 출판 소비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독서는 점차 ‘힙한 소비 행위’로 간주되면서 전통적인 독서 풍경과는 다른 양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이 현상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유사사회적 상호작용이다. 사람들이 크리에이터와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영상 속 친근한 어조와 모습 덕에 친구처럼 느끼고 자연스레 추천에 신뢰를 보낸다. 둘째는 수용 미학이다.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데, 북튜브와 북톡은 이를 개인적 경험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집단적이고 감정적인 축제로 확장시킨다. 셋째는 출판 커뮤니케이션의 재편이다. 과거에는 ‘저자-출판사-비평가-독자’라는 선형 구조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플랫폼과 독자가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주체로 등장했다. 그만큼 권력이 이동했고 책을 둘러싼 생태계 자체가 새로 짜이고 있다.

이 모든 변화를 종합해 보면 ‘텍스트 힙’은 단순한 유행어나 일시적 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부활하는 과거의 소설, SNS 해시태그로 공유되는 시집,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집단적 독서 경험은 모두 책이라는 매체의 사회적 의미가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를 걱정하지만, 우리 세대의 독서 방식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은 책의 소멸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책의 문화적 생명력이 아닐까. 이름 그대로, 오늘의 출판과 독서 현장은 “그 힙의 혁명”을 즐기고 있다.

한지혜(신문방송학과 석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