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고 구멍나고…캠퍼스 길 위협하는 ‘분홍 맨홀’
길 위의 지뢰, 부식 맨홀
학내 86개 중 10개 심각 부식
철제보다 저렴하지만 내구성 취약
시설과, 학내 맨홀 개수도 파악 안 돼
부식되고 낡은 분홍 콘크리트 맨홀(분홍 맨홀)이 대학 곳곳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전대신문>이 직접 우리 대학 용봉캠퍼스 길을 걸어 다니며 취재한 결과 총 86개의 분홍 맨홀이 캠퍼스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겉으로 봤을 때 균열과 부식이 심한 분홍 맨홀 10개도 발견됐다.
일반 철제로 만들어진 다른 맨홀과 달리 분홍 맨홀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내구성이 약하고 부식이 쉬워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적절한 시기에 교체하지 않은 부식 맨홀은 자짓하다 발이 걸리거나 빠지는 등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위험하다. 실제로 2023년 부산에서 맨홀 뚜껑을 밟고 부서져 한 행인의 발이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후 분홍 맨홀의 위험성이 언론에 보도되며 위기감이 커졌다.
권도용 수학과 교수는 우리 대학에서 심하게 부식된 분홍 맨홀 사진들을 찍어 포털 자유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권 교수는 “길을 가다 보니 파손된 맨홀들이 보여서 불안했다”며 “다른 구성원들도 조심했으면 해서 글과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부식된 분홍 맨홀을 밟았다가 사고가 난 뉴스를 봤다”며 “실제로 맨홀에 빠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서 항상 걱정이다”고 말했다.
관리 체계 없이 발견 후 보수하는 시스템
분홍 맨홀은 2000년대 초반 철제 맨홀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미관상 깔끔하다는 이유로 전국 곳곳에 유행처럼 설치됐다. 우리 대학에 설치된 분홍 맨홀들도 그때 설치된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시설물이지만 우리 대학은 설치된 분홍 맨홀의 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시설과는 “올해 7월부터 분홍 맨홀 전수조사 중”이라며 “폭우 이후 중단됐고, 전수조사를 도와줄 근로장학생이 오면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설치 시기와 부식 정도도 알 수 없었다.
관리도 별다른 체계 없이 부식된 맨홀을 발견하거나 신고가 들어오면 보수하는 실정이다. 맨홀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묻자 시설과는 “부식된 맨홀을 발견하거나 신고를 받으면 교체하고 있다”며 “시설과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 두번씩 현장을 돌아다니며 점검한다”고 말했다. 시설과에 따르면 올해 신고된 파손 맨홀은 2개이며, 현재는 둘 다 교체된 상태다.
권 교수가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심하게 부식돼 뚜껑에 구멍이 뚫린 맨홀 사진도 있었다. 권 교수는 “스토리움에서 자연대 1호관으로 내려가는 경사에서 발견해 사진을 찍었다”며 “현재는 보수가 되긴 했지만 교체가 아닌지라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놓는 게 더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자연대 앞, 정보마루 계단 맨홀 부식 심해
정보마루(디도)와 중앙도서관(홍도) 사이 계단에 있는 분홍 맨홀. 가까이 가서 보면 곳곳이 파여있고 콘크리트 찌꺼기가 나온다. 기자가 맨홀을 관찰했던 약 10분 동안 그곳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일부러 맨홀을 피해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이처럼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부식된 분홍 맨홀은 보통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인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대신문>이 판단한 부식이 심한 분홍 맨홀 10개는 △진리관 앞 △인문대 앞 △농생대 앞 △금호연구원 앞 △대학본부 표지판 앞 △자연대 앞 △언어교육원 앞에서 하나씩 발견되었고 디도와 홍도 사이 계단에서는 3개나 발견되었다.
특히 부식이 심했던 두 곳은 자연대 앞과 디도와 홍도 사이 계단이다. 분홍색이 다 벗겨져 콘크리트가 반 이상이 드러나고 그 일부마저 검은색으로 변질된 상태였다. 도서관 계단 분홍 맨홀 앞에서 만난 사범대 21학번 ㄱ씨는 “길을 걸으며 맨홀을 신경 쓰고 다니진 않는데 이건 좀 심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맨홀들도 가장 심한 두 곳까지는 아니지만 갈라짐, 주위 땅 균열 등이 발생한 모습이었다. 특히 분홍 맨홀 주위 땅이 변형되어 움푹 꺼지거나 튀어나온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분홍 맨홀들은 모두 보행자에게 위협이 되기 충분해 보였다. 박서윤(국어국문·23)씨도 “딱히 도보를 보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맨홀을 인지한 적 없는 것 같다”면서도 “굳이 맨홀을 밟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맨홀이 눈에 띈다면 피해서 걷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홍 맨홀을 취재하기 위해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만난 학생들은 길을 걸을 때 맨홀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자연대 22학번 ㄴ씨도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 있으니 굳이 맨홀을 밟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비 올 때 좀 더 신경을 써서 걷는다”고 말했다. ㄱ씨도 “원래 의도적으로 맨홀을 밟지 않는다”며 “밟아서 좋을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부식된 맨홀을 발견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어디에 신고해야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콘크리트의 특성 상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이 얼마나 부식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조연루(경영 24)씨는 “대학이 맨홀 관리를 하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길을 걸으면서 위험해 보이는 분홍 맨홀을 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에서 맨홀 관련 사고를 볼 때 나도 그런 사고를 당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분홍 맨홀 교체 중
전국적으로도 이 분홍 맨홀의 문제는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지자체는 내구연한이 지난 분홍 맨홀을 전수조사하고 튼튼한 철제 맨홀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약 1만5천개의 맨홀을 전수 조사해 철제 뚜껑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주도 또한 약 2천개의 분홍 맨홀이 설치되어 있으며, 많은 분홍 맨홀을 철제 뚜껑으로 교체 완료했다. 제주도는 나머지도 순차적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부산과 청주도 같은 해 교체를 시작했다.
현재 광주에는 분홍 맨홀이 총 1만여개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대적인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제한적으로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