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인가, AI인가?
전대시네마
어제는 챗GPT를 이용해 보고서를 다듬었고, 며칠 전에는 미드저니로 상상 속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코딩 실수를 잡아주고, 이미지를 손쉽게 편집해 주는 AI 도구들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의적이고 지적인 활동들이 이제 AI를 통해 손쉽게 구현되고 있다. 때로는 AI가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을 보며, 기술의 발전 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러한 경험은 문득 1982년 개봉한 SF 고전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 속에는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복제인간 '레플리칸트'가 등장한다. 그들의 뛰어난 지능과 감정은 과연 인간만의 전유물이었을까? AI가 만들어내는 예술과 창작물은 과연 인간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러한 물음은 영화가 던지는 핵심 주제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영화는 인간과 거의 똑같지만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된 복제인간 '레플리칸트'가 탈주했을 때, 그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의 이야기다. 데커드는 냉철하게 임무를 수행하지만, 인간의 기억을 이식받아 진정한 감정을 느끼는 듯한 신형 레플리칸트 레이첼을 만나며 그의 기억 또한 누군가로부터 이식받은 것이 아닌지, 그리고 무엇이 그를 레플리칸트로부터 구별짓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고뇌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게된다.
이야기는 마지막 탈주자 로이 배티와의 대결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짧은 생을 연장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수명이 다하여 죽게된다. 죽음 직전 자신이 경험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회상하며 담담하게 미소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경험을 통해 데커드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레이첼과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AI들은 영화 속 레플리칸트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다. 한때 우리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왔던 수많은 분야에서 AI는 인간과 비슷하게, 혹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AI의 능력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데커드가 레이첼을 보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듯, 우리는 AI의 뛰어난 능력 앞에서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로이 배티의 마지막 순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오리온 성좌의 불타는 전함들’과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의 빛나는 바다’를 보았다고 회상한다. 로이 배티에게는 이 모든 '경험'이 그를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이유였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지능이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통해 겪는 고뇌, 사랑,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경험들이다.
결국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 AI에 대체됨에 따라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시대에, ‘경험‘이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한가지 대안으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