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랭귀징의 세계

2025-09-22     전대신문

최근 미디어나 캠퍼스에서 한국어와 다른 언어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쓰이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에 영어, 일본어가 스며들기도 하고,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모어와 한국어가 자유롭게 오가며 새로운 표현이 탄생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역대 누적 시청 수 1위에 오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수록곡 ‘Golden’에는 중간중간에 전략적으로 배치된 한국어 가사가 눈에 띈다. 인터넷에서 K-문화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유튜브 댓글에는 다른 언어와 한국어의 결합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스페인어로 쓰인 댓글에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어 어휘가 삽입되고, 일본어 문장 마지막에 ‘-습니다’가 붙어 ‘다이스키이므니다’로 말하거나 ‘진짜 소레나(チンチャそれな)’라고 말하는 ‘한본어’, ‘한일믹스어’도 등장한다.

이처럼 언어 사용자가 언어 간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응용언어학에서는 ‘트랜스랭귀징(translanguaging)’이라 부른다. 트랜스랭귀징은 다중언어화자가 자신이 가진 언어적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코드스위칭(Code-Switching)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번갈아 사용하는 언어의 전환에 초점을 둔다면, 트랜스랭귀징의 관점에서는 언어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언어 자원들을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본다. 트랜스랭귀징은 수업에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교수·학습 개념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초등학생들의 글에서는 자신의 모어와 제2언어, 제3언어를 함께 사용하여 하나의 글을 쓰는 트랜스랭귀징이 쉽게 관찰된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각자의 모어로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는 한국어로 하도록 한다든가, 토론에서 여러 언어의 사용을 허용하는 것도 트랜스랭귀징의 실천이다.

이처럼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에서 우리말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더욱이 영어가 점점 더 국제어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지금, 과도한 영어 사용으로 인한 영어 제국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트랜스링귀징은 과도한 외국어의 사용보다는 여러 언어가 교차하며 사용되는 창조적인 언어적 실천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 대학 캠퍼스의 유학생들을 생각해 보자. 한국어 능력 부족은 유학생 자신에게도 언어 장벽이 되지만, 동료 학생들이나 교수자에게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대학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여러 유학생의 모어로 의논하는 소리,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이 부족한 한국어 능력을 보완하고 자신의 언어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트랜스랭귀징의 과정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열린 마음이다. 언어가 서로 만나 빚어내는 다채로운 소리를 배척하기보다 언어와 언어가 만나는 과정, 다중언어 화자들이 언어적 자원을 끌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트랜스랭귀징은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도록 하는 통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