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길다는 이유로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엊그제 태어난 것만 같던 우리 아이가 벌써 돌이 됐다. 손자를 보여드리기 위해 3년만에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갈 예정이다. 그런데 한 한국계 항공사 사이트에서 예매를 하다 뜻밖의 장벽을 만났다. “유아와 동반 성인의 전체 성, 이름의 합이 31자를 초과하는 경우, 31자 내로 입력해 주시고...”라는 오류 메시지가 뜨며 예약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다행히 아내의 이름이 한국 평균 길이여서 보호자로 표를 끊을 수 있었지만, 만약 아내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 항공사를 이용할 수조차 없었다.
우리 아이는 엄마의 성을 따르는데, 그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런 ‘이름 차별’ 때문이다. 필자 성은 로마자로만 12글자, 전체 이름은 퍼스트와 미들 네임까지 합쳐 26글자에 달한다. 한글로 써도 14글자다. 반면 아이 이름은 한글 3글자, 로마자로 9글자에 불과하다. 아내와 나는 한국에서 긴 이름이 각종 제약을 초래한다는 점에 공감했고, 결국 아이가 아내의 성을 따르도록 결정했다.
이름 차별은 특이한 차별이다. 누군가의 악의라기보다는 외국의 긴 이름을 상상하지 못한 개발자의 설계, 그리고 이를 검증하지 않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한국 온라인 사회의 실명제 문화 속에서 이름이 긴 것이 죄가 된 셈이다.
이 문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두드러진다. 종이 서류라면 작은 칸에 이름 26글자를 4포인트로 쪼개 넣는 정도의 ‘수고’로 끝난다. 다만 온라인에서는 성명란에 이름이 다 들어가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에러 메시지’로 막힌다. 운전면허증에서 미들네임이 생략되자 차량 대여가 몇 분이 아니라 며칠이나 지연됐다. 은행 계좌에는 성만 기재되어 다른 서비스에 계좌인증을 할 때마다 “예금주 성명과 일치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에 막혔다.
기관마다 입력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떤 곳은 한글, 어떤 곳은 영문 대문자, 또 다른 곳은 소문자를 요구한다. 띄어쓰기 규칙도 역시 통일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화통화로 26글자의 긴 이름을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한 글자씩 불러야 한다. 그 과정은 ‘절차적 고문’에 가까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구조적 차별은 노골적인 배제가 아니다. 절차마다 작은 장벽을 세워, 소수자의 시간을 조금씩 빼앗고, 결국 “그냥 포기하자”는 체념으로 몰아간다. 그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들의 이름은 세 글자에 그쳤다.
그러나 성을 포기하게 된 아쉬움은 남는다. 필자의 부모님은 결혼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이다. 할아버지는 결혼을 재촉하셨지만, 필자가 태어나 아버지의 성을 따르자 잔소리를 멈추셨다. 할아버지에게는 성을 잇는 일이 중요한 의미였던 셈이다. 우리 아버지는 집안의 막내였고, 할아버지에게 필자는 유일한 남자 손자이므로, 결국 그 성은 필자와 함께 끊기게 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아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불편과 차별의 대상이 될 긴 이름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