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 걱정보다 인구 보존부터

2025-11-10     박승빈 기자

지난 6월 저녁 필자의 어머니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다. 피가 멎지 않는 손을 붙잡고 구례군에 하나뿐인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여기선 못하니 큰 병원으로 가라”였다. 결국 어머니는 40분을 넘게 달려 순천의 한 병원에 갔지만, 수지 접합 전문병원이 아니었기에 간단한 처치만 받고 다음 날 광주의 한 수지 접합 전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골든 타임’이 지켜져야 할 응급 환자에게 구례 응급실은 1차 병원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2016년 동생이 태어날 무렵 구례에는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었다. 점점 배가 불러가는 불편한 몸에도 어머니는 순천까지 가서 진료받았고, 만삭의 몸으로 순천까지 원정 출산을 가야 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구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고향인 구례는 전라남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다. 인구가 적으니 돈이 되는 큰 병원이 들어서지 못하고, 아이를 낳을 산부인과조차 없으니 청년들은 들어오지 않고 인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의료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사람이 그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물론 구례에도 병원은 있다. 어르신들은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아침 시내버스를 가득 채운다. 작년 7월 보건의료원에 산부인과 ‘진료’가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출산은 불가능하다. 하나뿐인 종합병원의 실상은 큰 수술이 불가능한 1차 병원에 가깝다. 응급수술이나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여전히 도시에 있다.

의료 공백은 단순히 병원의 유무 문제가 아니다. 큰 병을 다룰 수 없는 병원, 골든 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병원은 군민들에게 불안함을 준다. 구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곡성·장성·함평 등 전남의 많은 지역이 비슷한 처지다. 결국 이 부담은 광주로 몰린다. 의료의 집중은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안에서도 중심 도시에 의료가 집중되고, 그 바깥 지역은 점점 의료 공백 지대가 되어간다.

우리는 지방 소멸을 걱정하며 청년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내 아이를 낳을 수도, 부모님의 응급 수술도 보장하지 못하는 고향으로 과연 누가 돌아올 수 있겠는가. 의료와 교육, 교통이 끊긴 지역에 청년이 정착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의료 공백은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자 지역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고향을 지키려면 사람을 부르는 말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병원부터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