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정치를, 법률가는 법을 다뤄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특강 <법률가의 길- 魂創通>
법률가의 세 가지 덕목 '혼·창·통'
"학벌보다 실력이 법률가 증명"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지난 13일 법학전문대학원 1호관 준공 기념 특강에서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법률가는 법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정치와 사법의 분명한 역할 구분을 강조했다. 문 전 재판관은 이날 강연을 통해 정치·사법의 경계, 법률가에게 필요한 덕목, 학벌 중심 사회의 문제 등을 이야기했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
문 전 재판관은 정치인들이 법률가에게 간섭하거나, 반대로 법률가가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려는 태도를 모두 비판했다. 그는 “정치의 본령은 민생 회복과 사회 통합”이라며 “정치의 일을 법률가에게 떠넘기거나, 법률가의 영역을 정치인이 대신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가 풀지 못하는 과제를 헌법재판소가 해결하듯 정치의 사법화가 자연스러울 수 있지 않느냐고 방청객 김은솔(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씨가 묻자, 문 전 재판관은 정치 문제와 법률 문제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 당시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재판관 3명의 퇴임이 10일 앞으로 다가오며, 정족수 부족으로 심리가 불가능해질 우려가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가 재판관을 빨리 선출해야 한다’는 정치적 해법이 거론됐지만, 문 전 재판관은 “그것은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대신 법률대리인이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 효력정지 가처분이라는 법률적 해결책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심리 공백을 막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법률가는 법으로 풀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의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한다”며 역할 구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법률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덕목: 혼·창·통
문 전 재판관은 법률가가 갖춰야 할 자질로 ‘혼(魂)·창(創)·통(通)’을 제시했다.
혼(魂)은 법률가로서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문 전 재판관은 “나는 왜 법률가가 되었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호사가 된 순간에는 누구나 이 질문을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더 이상 묻지 않는다"며 "나는 33년 동안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창(創)은 독창성과 본질 파악 능력을 뜻한다. 문 전 재판관은 스티브 잡스의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전하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본질만 남기는 사고방식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핵심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의 교육은 본질을 찾도록 돕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通)은 소통의 기술로 경청·표현·이름 기억하기 등의 능력이 있다. 문 전 재판관은 “우리 사회는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인용해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학벌 중심 사회 비판
문 전 재판관은 학벌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서울대를 나오면 뛰어나고 지방대를 나오면 부족하다는 인식은 부당하다”며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함께 일한 법률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경찰대 출신이었다고 언급하며 “경찰대가 서울대보다 랭킹이 높은가? 학벌과 실력은 별개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지역 법관 출신이라 대통령과 친해서 재판관이 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지역 법관이라고 일을 못했느냐"고 말했다. 이어 "판사면 판사지, 서울 판사 따로 있고 지역 판사 따로 있느냐"며 "서울에 대한 콤플렉스를 버려라"고 덧붙였다.
강연 이후에는 OX퀴즈와 질의응답 등을 진행했다.
강연을 마치며 문 전 재판관은 “서울대를 나왔다면 실력을 증명하고, 지역에서 공부한다면 자신만의 길을 찾으면 된다”며 지역 법학도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