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인과 휴머니즘

전대신문 사설(2002/09/02)

2002-09-08     관리자

대학인과 휴머니즘

면학의 심지를 돋우어 새로운 마음으로 학문에 임해야 할 신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예사롭지 않은 나라 안팎의 소식은 안정된 대학 생활을 보장해줄 것 같지 않다.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수해가 심각한 것과는 다르게 비록 생활의 피부에 쉽게 와 닿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른바 '힘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대학인이나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우선 병역비리 공방 문제를 들 수 있는데, 모 정당에서는 검찰 수사를 간섭하고 언론사에 따지며 탄핵과 해임과 부결로 수적 우위를 과시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의 실정으로 촉발된 국정 난맥과 연계하여 끊임없이 혼돈 상태를 촉발함으로써 몇 달 후의 대선에서 정권 교체의 정치적 명분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세간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나라 밖에서는 연내에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부시의 공언으로 전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유력한 우방들이 연일 전쟁 반대 성명을 발표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60년대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망령이 지구촌의 울타리를 배회하고 있음이다.
힘을 앞세운 이들의 조폭적 행태는 '세상은 힘센 자의 것'이라는 논리인 셈인데, 그들의 유일한 양식이자 생존 방식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거기에 평화란 없어 보인다. 단지 사이비 평화주의와 반휴머니즘의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 따름이다.
정치와 이념의 정도(正道)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문을 통해 고민하고 탐구하고 또 사색하면서 대화를 추구하는 대학인의 삶의 좌표가 모름지기 평화라는 명제에 수렴되어야 하고 그 안에 내재된 평등과 조화, 공동체의 선을 지향해야 한다면, 독선적인 힘의 논리로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말살하는 요즈음의 세태야말로 휴머니즘의 근본 정신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이 인간의 이성과 선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고, 물질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 제도적 질곡에 의한 인간과 인간성의 억압과 마주치면서 저항적이고 적극적인 휴머니즘으로 발전한 사실은 인류 정신사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드높이기 위해 마땅히 선의 이름으로 대항하여야 하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대학인으로서의 총명한 예지적 지성과 비상한 도덕적 용기를 더욱 갈고 닦아야 하리라 싶다. 휴머니즘은 안일한 감상주의도 아니고 성실과 용기를 요구하는 실천적 정신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우주의 영광이자 우주의 쓰레기"라고 했다. 이중적 존재이자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상적 인간상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 할지라도 부조리와 모순을 고뇌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 지성과 섬세한 감성, 높은 덕성을 고양하고 인간의 미래와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야말로 인간이자 대학인으로서 중핵적 의무이다. 휴머니즘의 정신을 다시 발견하는 새학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