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정서적 전쟁 상태야.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대립이 만연하다고. 그냥 누군가 트리거만 당겨주면 돼.”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2025) 속 불법 총기 판매 조직 ‘문백’의 대사다. 트리거(trigger)는 총의 방아쇠를 뜻하면서도 방아쇠처럼 어떤 행동·감정·사건을 촉발하는 자극을 가리키기도 한다. 드라마 속 대사일 뿐일까. 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감정적 도화선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분노와 폭력으로 번지고, 그 여파로 상식 밖의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트리거>는 총기 소지가 금지된 한국 사회에서 불법 총기가 택배로 대량 유통되며 벌어지는 혼란을 그린다. 오랜 기간 공시를 준비해 온 청년 ‘정태’는 누적된 스트레스와 현실에 대한 분노·절망 속에서 내면이 붕괴한다. 결국 그는 방아쇠를 당기고, 참혹한 비극의 막이 오른다. 이어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학생, 산업 현장에서 아들을 잃었지만 사업주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어머니, 전세 사기로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도 총이 배달된다. 대한민국 곳곳, 구조적 상처가 자리한 현장마다 가장 약한 이들의 손에 총이 쥐어진다.

과연 이들에게 시원한 복수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과열된 경쟁, 무너진 안전망, 불합리한 노동, 고립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해소되지 않은 분노가 상품처럼 거래되는 자원으로 전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을 팔기에 좋은 나라”라는 말은 곧 “분노를 팔기에 좋은 사회”라는 고발이다. 드라마는 총이라는 장치를 통해 분노를 사고팔지만, 현실은 훨씬 더 교묘하다. 정치는 혐오와 갈등을 선동하고, 온라인 플랫폼은 자극적인 콘텐츠와 악성 댓글로 주의를 수익화하며, 시장은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마케팅으로 과소비를 유도한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 존중’이라는 미명으로 ‘내가 좋으면 그만’의 논리를 절대화함으로써 관계의 단절과 분열을 부르기도 한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은 ‘누가 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공포와 ‘언젠가 내가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기 피해의 공포로 확산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나도 총을 가져야 한다”는 자기합리화로 이어진다. 공포가 또 다른 무장을 낳고, 그 악순환 속에서 사회는 신뢰 대신 의심을, 대화 대신 방아쇠를 선택한다. 아수라장이 된 ‘총기 소지 합법화’ 찬반 시위 현장이 그 단적인 장면이다. 서로를 향한 구호는 순식간에 겨눠진 총구로 바뀌고, 공포는 광장을 공론장이 아니라 전장의 모형으로 만든다.

경찰 ‘이도’는 총을 든 이들의 상처를 끌어안는다. 그 역시 어린 시절 강도에게 가족을 잃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범인을 총으로 쏘려 한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을 잘 아는 ‘이도’를 통해 분노에 뒤엉켜 있던 절망, 억울함, 슬픔, 고통, 두려움, 미안함, 무기력함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감정들은 결국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은 바람이었다. 총을 내려놓은 손 위에 ‘이도’는 자신의 손을 얹는다. ‘정서적 전쟁’ 속 분노를 이용하는 자는 총을 팔지만, 분노를 이해하는 자는 사회를 회복시킨다.

신정선(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신정선(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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