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도움 위한 네트워크 필요…저항예술가 지원방안 모색 중“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관심이다. 관심이 없는 것에 비례해 미얀마 군부의 인권 유린 정도는 더 심해질 것이다. 타인의 인권을 지킬 때 비로소 우리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다.”‘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을 꿈꾸는 Dreamers(드리머스)’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공연과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다문화 인권 공연단체이다. 박태상 드리머스 대표(51)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광주의 5·18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미얀마에 도움을 줄 방법을 찾던 중, 그는 지난
1982년 소리 새나갈까 이불 걸어두고 노래“민주화 위해 일한 여성의 이야기, 기록되지 않아 안타까워”“같이 활동했던 사람의 절반이 여자였다. 지금 생각해도 남자들 이름은 떠오르는데 여자들의 이름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5·18 당시 활동했던 여성의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은 사실이 안타깝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떠나간다. 가정생활은 다음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에서 당시 활동했던 여성의 목소리가 기록되지 않아 속상하다.”임
궐기대회 사회 보며 광주 시민의 목소리 가까이 느껴극단 ‘광대’ 창립해 예술 통한 민주화 위해 노력"5ㆍ18 이야기 더 풍부하게 조사해야" 이 전남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1980년 광주5월민중항쟁 당시 전남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과 설립 34주년을 맞이한 ‘한국현대사회연구소(전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를 이끈 고(故) 송기숙 교수를 중심으로 구술 채록된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다.“5·18이라는 것이 꼭 무장 항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은 각자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생애 마지막 인터뷰‘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주범으로 몰려 사형 선고석방 후 5·18 진상규명 위해 힘써이 전남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1980년 광주5월민중항쟁 당시 전남대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고(故) 송기숙 교수를 중심으로 구술 채록된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다.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지난달 27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과의 인터뷰가 광주 5월의 정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일한 고인의 마지막 인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 남아책 통해 항쟁 주체인 시민의 이야기 담고자 노력"청년기에 우연히 겪은 5·18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평범한 일상을 살기 어려워졌다. 감옥을 다녀오니까 취업도 안 돼서 몇 년 동안 고생했다. 그릇, 술, 땅콩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복학 후 항쟁 기간 목격했던 것을 언젠가 기록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5·18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록을 정리하고 알려야 했다. 부인해도 부인되지 않을 기록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광주5월민중항쟁
48.3% 지역 기업과 협업, 취·창업 지원 강화 필요하다 응답99.5% 등록금 강점, 45.6% 취·창업제도 약점“역량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취업 잘 됐으면 좋겠다”“대학에서 배운 지식 지역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30년후 우리 대학은…48.5% ’질 높은 교육과 연구 수행하는 대학‘되길 바라우리 사회는 10,20대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계청의 ‘주요 연령계층별 추계인구-전국(2021)’에 따르면 학령인구(6~21세)는 2022년 748만 2천명에서 2040년에 446만 8천 명까지 떨어질 것으
“부족한 인력에도 포기 않고 26일까지 일했다”시민 희생 막기 위해 노력“5·18이라는 꼬리표가 인생에 계속 따라다녔다. 같이 항쟁했던 우리 5·18 동지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다. 5·18뿐만 아니라 목포 사람이라는 게 회사에 알려지고 난 후 회사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그는 광주5월민중항쟁(5·18)에 참여했다는 이유, 호남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학 졸업 후 당시 서울에 있었던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승진이 밀리는 차별을 겪고 7년간 일했던 회사를 그만뒀다. 5·18 당시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창길 씨(농업경제·77
임시학생수습위원회 총무로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광주5월민중항쟁, 인생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이 전남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1980년 광주5월민중항쟁 당시 전남대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과 설립 34주년을 맞이한 ‘한국현대사회연구소(전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를 이끈 고(故) 송기숙 교수를 중심으로 구술 채록된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다."그게 좀 이상해. 내가 살려면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 운 없으면 죽는 것이고 운이 있으면 어떻
학생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동참“항쟁 마지막 지킨 사람 기억해야”이 전남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1980년 광주5월민중항쟁 당시 전남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과 설립 34주년을 맞이한 ‘한국현대사회연구소(전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를 이끈 고(故) 송기숙 교수를 중심으로 구술 채록된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다.“아버지도 그 모양인데 너도 학생 운동한다고 뛰어다니냐.”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에 동참했던 안진오 교수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당시 문리대 학장 정득규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추진 공약…“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겠다”블라인드 채용제, 지역할당제로 지역대 차별 해소 약속“청춘은 아프다. 젊은 사람들의 감수성으로 봤을 때 이 세상은 온통 부조리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이 젊은 시기가 가장 아름다웠던 때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괜찮아, 남들도 다 함께 겪는 거야, 열심히 하면 다 잘해낼 수 있어, 지금 어렵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다 잘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격려해 달라.”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를 만났다. 대학언론인
1952년 개교한 우리 대학은 60년의 세월동안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1980~90년대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가장 치열하게 치룬 대학이다. 우리 대학은 5·18민중항쟁, 반군사독재, 반미, 학생운동을 이끌어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룩했다. 에서는 민주화 열사들의 공로를 기리며 우리 대학이 지난 60년동안 일군 민주화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긍지로, 박관현 열사, 윤상원 열사, 박승희 열사 등 용봉 16인 열사를 기리며. /엮은이
이번 2학기부터 전대신문에서는 취업 면에 학생들이 선호로 하는 직업을 선정해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 집단인터뷰 ‘직업을 밝히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선정된 직업의 준비과정, 실상, 흐름 등에 대해 낱낱이 소개합니다. 처음은 교수직 편으로 우리 대학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서곤 교수(응용화학공학‧촉매화학)와 이지헌 교수(교육학‧교육철학)를 만나 교수직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엮은이-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시기가 언제인지, 계기가 있다면?서곤(이하 서): 교수가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