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애는 안 하니?”

뜨거운 차를 마시지도 못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장난인가 했지만, 세영 언니의 진지함은 그게 아니라는 눈치였다. 숨을 한 번 내쉬자, 턱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세영 언니는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일어나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왔다.

“이게 뭔데?”

“집에 가서 한 번 읽어봐.”

“나 요즘 집 안 가잖아...”

세영 언니는 나를 보며 웃었다. 집에 가든 가지 않든 이 책을 읽으라는 눈빛. 가방을 열어 책을 넣고, 스테이플러 심으로 집은 종이 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번 호 마감 원고. 내용은 보면 알 테고.”

세영 언니는 원고를 뚫어지게 보다가 그것을 탁자 위에 내려두고 손바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거기에 군침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은 대학 시절 종종 보던 것이었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가지고 있다는 듯 농농한 눈빛이 아른거렸다.

“너한테 할 제안이 있는데.”

“무슨 제안?”

원고는 이미 관심에서 벗어났다. 전날 밤잠까지 설쳐대며 한 걱정이 무기력하게 늘어졌지만, 그보다 큰 불안이 뒤에 서 있었다. 세영 언니의 입술이 움직였다.

“누구 인터뷰 좀 해볼래?”

무슨 인터뷰일까. 예전 같으면 이런 생각도 하기 전에 거절했을 일이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뀐 것인지, 그녀의 살랑거리는 잔머리에 맞추어 나의 불안은 점차 설렘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당신이 군침까지 삼켜댈 정도라면 여간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겠지.

“다음 주에 한나 킴이 한국에 와. 신작 홍보 겸 차기작 로케이션으로. 너 좋아했었지, 그 사람.”

좋아했다기보단, 현재 더 좋아하는 중이다. 찬경이가 살아있을 때, 그녀의 영화를 자주 같이 보았다. 그때마다 찬경이는 한나 킴의 영화를 찬양하며 눈을 반짝이곤 했다. 찬경이의 죽음과 함께 그 기질이 나에게로 날아온 것일까. 나는 입을 벌린 채로 눈만 껌뻑이며 세영 언니를 쳐다봤다.

“왜...? 싫어?”

“아니, 좋아.”

세영 언니는 가볍게 웃곤 자신의 집으로 가 자세한 얘기를 하자고 했다. 세영 언니가 키우는 포메라니안 ‘폴’처럼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출판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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