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전체 유권자의 67%가 참여해 30년 사이에 있었던 선거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여당은 전체 300석 중 108석을 얻어 참패했다. 의석수만 놓고 보면 야권이 압승한 선거였기에 결과에 대한 반응을 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야당 지지자들은 압승했지만 진 것 같은 반응을 보였고, 여당 지지자들은 참패했는데도 안도했다. 야당 지지자들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과대평가했고 반대로 여당은 과소평가했다. 두 진영 모두 자기 세계에 갇혀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총선에서도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언어는 너무도 달라서 외국어를 쓰는 것 같았다. ‘명품백 수수’, ‘채상병 특검’과 같이 권력형 비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정부 지지자들에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조심판’처럼 야당 지도부의 사법리스크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야당 지지자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특히나 호남 유권자들에게 보수 지지자의 논리는 궤변으로 보이는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호남(광주·전남·전북)에서 7%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보수색채가 강한 개혁신당까지 포함해도 10%를 넘지 않는다. 이 수치는 호남 유권자에게 정부·여당의 언어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수와 진보는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바른마음>에서 진보와 보수의 도덕 기준이 다르다고 말한다. 진보가 피해(고통), 공평성(불의)을 도덕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보수는 자유, 충성, 권위, 고귀함 등의 기준에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무감각한 정부의 태도,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도이치모터스, 명품백 수수 등), 채상병 수사 외압을 진보주의자들이 참을 수 없어 하는 이유는 이들에게 고통과 공정성이 도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같이) 규제를 통해 시장의 자유를 억압하고, (SNL코리아 시즌4의 ‘눈까리’처럼)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MZ세대가 권위를 무시하고, (퀴어축제와 같이) 고귀한 성 규범을 파괴하는 문화가 허용될 때 보수주의자는 분노한다.
이 글의 독자는 광주·전남 출신으로 진보적 성향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의 도덕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이들을 비이성적이고 무지한 집단으로 치부할 수 있다. 상황을 이렇게 이해하면 상대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정치 양극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팩트체크에 집중하고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진단이 정확한가? 진영이 달라지면 ‘이성적 판단’의 기준도 달라진다.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고, 심지어 정보의 진위도 달라진다.
나와 다른 도덕관을 가진 사람을 내가 가진 논리를 활용해,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진보의 논리를 강조하는 것은 진보 진영의 결집을 불러올 수는 있지만, 설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은 방어심리를 갖게 되고 적대감만 커질 것이다. 진심으로 설득을 원한다면 상대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