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만점을 받게 되면 선생님에게 더 칭찬받지 않을까 싶어 커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위법행위는 학교 시험에서 ‘올백’이라는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치부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그때의 나는 남을 속이고, 나의 능력을 속여 인정을 받고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인정과 관심이 고픈 사람들이다.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관심을 갈구하는 주인공이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관심이 고픈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던지는 영화다.

주인공 ‘시그네’는 평범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행위예술가이자 관심을 한눈에 받는 존재이다. 시그네는 남자친구가 받는 관심을 시기하며 남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식사 자리에서 주목을 받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땅콩 알레르기로 쓰러지는 연기를 펼치는 등 자신의 본모습을 속이는 노력을 한다. 이후 그녀는 과다복용 시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는 약물을 복용하면서 자신이 받는 관심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결국 시그네는 본인이 의도한 대로 몸에 이상이 생기며 온갖 관심을 받게 된다. 영화 후반부, 온몸이 망가진 그녀의 주변은 공허함만이 존재하게 된다. 지인들은 모두 떠나갔으며,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병으로 인한 수술 자국뿐이다. 시그네는 이제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지속해서 시그네가 느끼는 ‘시선’들을 화면 속에 담는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부터 미술관의 동상들까지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정작 사람들은 본인에게 관심이 없으며, 동상들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연출을 통해 마치 ‘시선’들이 실제로 시그네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며 후반부에 치달을수록 빈번하게 전환되는 시선을 통해 그녀가 느끼는 ‘시선’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이 ‘시선’에 대한 연출은 관객에게 실제로 현대인들이 겪는 자의식과잉을 떠올리게끔 한다.

조회수, 좋아요 등 우리는 관심의 척도가 뚜렷하게 보이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조회수가 늘어가는 자신의 게시글을 보며 우리는 행복함을 느끼고 우월감을 느낀다. 좋아요 하나는 곧 한 사람의 시선과 같기에 우리는 더욱 많은 좋아요를 갈구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고 상대방이 관심을 가질만한 모습을 게시글 속에 내세운다. 이는 영화 속 시그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관심받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왔던 관객들의 모습과 시그네의 모습이 겹쳐 보이게끔 한다. 망가지는 그녀를 보며 우리는 마음 한쪽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잃게 된다면 우리는 시그네와 같이 관심만 남고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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