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6주 태아 낙태 사건’을 들었을 때 “국회가 숙제를 안 하면 사람이 죽는구나” 싶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의 문구에 국회가 낙태를 너무 광범위하게 범죄로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2020년 12월 31일 이전에 개선 입법을” 할 것을 ‘숙제’로 주문했다. 기한 내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낙태죄에 관한 조항은 “2021년 1월 1일부터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경고하였다. 결국 국회는 이 조별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올해 6월 한 태아가 태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태아가 살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살인이란 사람(人)을 죽인 것인데 태아를 법적으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민법을 보면 “사람은 생존한 동안” 살인을 당하지 않을 생존권 등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한다(제3조). 민법은 예외적 상황에서만 “태아는 …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제762조 등)라고 하지만, 이는 태아가 출생한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검찰은 이 사건에서 아기가 엄마의 몸에서 나왔을 때 이미 죽은 상태가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상태임을 증명해야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2021년 2월 대법원은 비슷한 사건에 판단을 내렸는데 그때 34주 태아가 제왕절개 후에 숨을 쉬고 있었다는 증명이 있었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나왔을 때 생존(生存)해 있었기에 사람이고, 그 후 익사를 당했기에 분명하게 살인을 당한 것이다.
만약 검찰이 태아가 독립적으로 생존하고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해당 의사와 임산부는 법 앞에 (살인)죄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임산부는 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 자기 선택권을 활용했을 뿐이다. 도덕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해도 합법 행동이다. 낙태 과정을 브이로그로 찍고 공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겠지만 불법은 아니다. 국회가 숙제를 제출하지 않아 낙태죄 효력을 상실하게 했기에 합법이다.
학교에서의 숙제는 사회생활의 연습용이다. 학생이 숙제를 안 하면 본인의 학습 기회를 버리고 선생님을 슬프게 할 뿐이다. 조별 과제도 남과 싸우지 않고 협력하여 최소 수준을 넘는 결과를 제출하는 연습일 뿐이다. 진짜 숙제는 미제출 시 본인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으로 보통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며 받게 된다.
국회는 조별 과제를 하는 과정에서 타협하지 못해서 아니면 그냥 사회로부터 충분한 억압을 받지 못해서 ‘선생님’ 역할을 하게 된 헌법재판소와 사회에게 아무것도 제출하지 못하였다. 이로써 국회는 정상 분만 시기에 가까운 36주 임신부가 병원에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언제든, 어디서든, 사회적·구조적 문제를 개인 문제로 삼아 그 개인을 탓하는 추세가 있다. 그래서 당신의 숙제는 누구에게 제일 화를 내야 하는지 구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합법적으로 36주 태아를 없앨 수 있는 임산부와 의사일까? 임산부가 ‘이 사회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회일까?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위한 숙제를 하지 않은 국회일까? 아니면 그 숙제를 냈던 헌법재판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