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털린 역설’은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소득 수준이 증가한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실제 우리의 경험과는 너무 다른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이스털린 역설은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들보다 소득이 작을 때 불행하게 느낀다는 점을 인정한다. 사실 우리가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좋은 차를 몰고 싶어서, 누군가는 가보았을 흑백요리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보지 못한 것이 억울해서가 아닌가? 우리가 조선시대 임금님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산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우리 사회 속에서 내 소득이 어디에 위치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상대적 소득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를 씌운다. 30명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1등부터 30등의 순서가 매겨진다. 다 같이 열심히 일하던 다 같이 놀던 등수의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한 사회의 소득이 올라간다고 사회의 행복 수준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 수준, 양극화가 감소하면 사회의 행복 수준은 증가한다. 

이리 말하면 뭘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정말 어렵게 사는 내가, 누군가가 있는데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그러나 세금은 그래서 존재한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1등과 30등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그래서 다 같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때로는 내가 아닌 모두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서 세금이 필요하기도 하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안이 철회되었고 가상자산 과세는 유예되었다. 내 돈을 뺏어가는 세금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상대적 순위를 올리기 위한 경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회 속에서 한 계단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쩌면 낼지도 모르는 세금이 두려워 양극화를 줄이고 정말 힘든 사람들을 돕기 위한 노력에 그토록 인색해야 할까? 세금이 나의 순위를 그다지 바꾸지 않는다. 바꿀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면 당신은 경쟁의 늪에 너무 깊이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