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뉴스를 보다가 세계기상기구(WMO)에서 2024년에 전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대비 1.5도 올랐다며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은 그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면 인간의 노력은 소용없어지고 지구온난화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간다고 한다. 이제는 인간이 노력할 수 없는 경지까지 와버린 상황 속에서 지구온난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재난을 가져다줄 것이다. 가뭄이 될 수도 있고 해일이 될 수도 있고 산불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그러한 재앙이 덮칠 때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스즈메는 어느 날 우연히 신비로운 문을 열게 된다. 그 문은 일본의 큰 지진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미미즈'를 가두고 있던 것이었는데, 그 문이 열리고 미미즈는 전국 각지에 재앙을 가져온다. 스즈메는 문을 열어버린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재난을 일찍이 막고 궁극적으로는 문을 닫으려 애쓴다.
나는 이 영화가 던지는 환경적인 메시지에 주목하고 싶다. 스즈메가 깨운 미미즈라는 존재는 웅대한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앙과 자연의 화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는 스즈메라는 존재가 이를 인식할 수 있고 막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도 없고 그것을 막을 수도 없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우리가 현실에서는 구현하지 못할 어떤 힘을 보여주면서 역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미미즈를 가두고 문을 잠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요석이다. 스즈메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 요석을 박아서 다시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잠근다. 현실에서 이는 전 지구적 노력을 상징한다 볼 수 있는데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우리가 처한 기후위기는 희생 없이 절대 나아질 수 없다. 이 요석은 국제적인 협약과 같은 거창한 희생일 수도 있고 어쩌면 메일함 정리 같은 소소한 희생일 수도 있다. 우리의 요석들이 모이면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문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영화 속의 요석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두 스즈메인 것이다. 재앙을 예측하고 미리 막는 초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스즈메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없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상황을 방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은 우리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미래 또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그보다 더 잘 알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스즈메 중 한 명으로서 이번 여름이 오기 전 <스즈메의 문단속>을 볼 것을 추천한다. 영화 속 시원하고 청량한 하늘과 아름다운 사랑을 느끼며 우리가 숨 쉬는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들의 요석을 오늘부터 만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