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 존재 명문화에 의미
대학언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공론장 형성의 주역이었던 대학언론도 매체 전반의 쇠퇴 흐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종이 매체 기반이 흔들리고 기사를 보는 학생 독자들의 관심도 예전 같지 않다. 여기에 더해 상시적인 인력 부족과 예산 삭감 등이 더해지며 대학 언론은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지난해 11월 대학언론의 설치와 업무 등을 명시한 ‘대학언론법’이 발의되었다. 해당 법의 제정 배경과 한계에 대해 살펴봤다.
대학본부, 비판 대상이자 재정 기반
대학언론이 갖고 있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북대신문> 이예령 편집장은 “대학언론도 ‘언론’과 ‘신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우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예산상의 문제, 학업 병행으로 인한 시간적 여유 부족 등의 이유로 그러지 못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채널PNU> 조승완 부대신문 국장은 기성언론과 비교했을 때 대학언론의 어려움은 재정 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대학언론은 대학본부의 하위기관이나 부속기관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조 국장은 “대학언론으로서 대학본부를 비판해야 하지만, 대학본부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언론의 외부적 위기 요인에는 △종이신문의 쇠퇴 △수용자인 학생들의 관심 저조가 있고, 내부적 요인에는 △편집권 갈등 △인력난 △재정 삭감 등이 있다. 이중 편집권 갈등에 관한 문제가 뚜렷한 해결 방안 없이 대학언론들에게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1일 ‘대학언론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대학언론법 입법간담회’(간담회)에서 윤희각 부산외국어대 글로벌인재융합전공 교수가 각 대학신문사의 보도 내용을 재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5년간 한국 대학신문의 편집권 갈등 사례는 총 23건이다.
그중 숭실대의 <숭대시보>는 지난 2021년 학교와 총장에 관한 비판 기사를 준비했다는 이유로 신문 발행이 중단되고 기자 전원이 해임당했다. 당시 <숭대시보>는 총장이 한 기성언론 인터뷰에서 ‘전면 대면 수업 추진’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검증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학교 측의 압박이 시작됐고 기자 전원 해임 및 조기 종간이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밖에도 총장에 대해 비판하거나 학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여러 이유로 대학언론들이 신문을 강제 수거당하거나 발행이 중단됐고, 학생 기자들은 백지 발행, 항의성명서 게재, 호외 발행 등으로 편집권 보호를 외쳤다.
애매모호한 편집권 개념
각 대학언론마다 자세한 대립 사유는 달랐지만 대부분 학생 기자와 주간 교수 사이, 혹은 학생 기자와 대학본부 사이에 발생한 대립이었다. <채널PNU> 정윤서 기자는 기성언론과 다른 대학언론의 구조적 한계를 설명하며 “총장, 즉 대학본부가 대학언론의 발행 주체이면서 취재 대상이자 탄압의 주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학언론은 기성언론과는 다른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편집권 대립이 일어나는 이유는 편집권이란 무엇이고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명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권의 사전적 정의는 ‘편집에 대한 모든 일을 간섭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편집은 무엇을 하는 일인지, 간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 어디에서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각 대학언론의 규정을 보더라도 편집권과 관련한 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본지 “대학언론 규정 ‘부실’, 보호할 법도 없어” 참고> 이예령 편집장은 “인수인계 받은 문서 중 편집권에 관해 명확히 규정한 부분은 없었다”고 말했다. 조 국장도 부산대언론사규정 제6장 제2항 제1호 '부대신문 편집국장은 온·오프라인 신문발행을 위한 취재 및 편집 업무를 총괄한다.'를 언급하며 “본사 규정에 편집권이란 명확한 단어가 있지는 않다”며 “국장의 권한을 명시한 부분이 편집권을 설명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독립성·자율성 향한 첫걸음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대학언론법)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정을호 의원은 간담회에서 “대학언론은 대학 내 소속 기관이라는 이유로 학교 당국의 통제 아래 놓이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언론법은 대학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시작점이다”고 말했다.
대학언론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이번에 처음 발의된 건 아니다. 지난 2022년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대학언론의 권리를 규정한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장의 대학언론 재원 지원·보조, 학생회와 동아리, 대학언론을 포함한 학생자치기구를 향한 부당 개입을 금지하는 내용까지 담겨있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고 정을호 의원이 이를 바탕으로 다시 발의한 것이다.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법안의 통과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적 지원과 학생자치기구 부당 개입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원지현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의장은 “대학언론의 위기가 수십 년간 진척이 되지 않았다”며 “대학언론법이 대학언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언론법, 만능 해결책은 아냐
대학언론법은 대학언론이 겪는 모든 위기를 해결해 주기보단, 편집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근거만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울과기대신문> 김종현 편집장은 대학언론법에 대해 “처음으로 대학언론의 존재를 명문화하고 독립적인 운영을 규정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조항이 주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대학언론법 제3항 ‘대학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고, 학교는 대학언론의 자율적인 편집 및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를 언급하며 “대학언론이 학생 기자를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경우에 따라 대학본부가 해당 조항을 유리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을 받는 대상과 비판할 대상이 같은 대학언론의 특징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정 기자는 “기성언론과 대학언론의 구조적 차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입법에 회의적인 시선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언론법의 입법을 위해선 대학언론과 기성언론의 다름을 설득해 사회적 이해와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언론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대학언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인하대학신문> 박하늘 편집국장은 지난 4일 칼럼 ‘이왕이면 언론답게’에서 “대학언론법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며 “재정 지원 의무 조항은 빠졌고, 법 조항은 포괄적이다. 편집권 침해 등에 맞서기 위한 실질적인 대응 역시 미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자각이다”며 “‘법적 보호’라는 울타리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끝까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