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를 볼 때면 공들여 만들어진 잡지 한 권을 읽는 기분이다. 자주 등장하는 빨간색의 이미지와 같이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초기 걸작이라고 알려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뿐만이 아니라 <하이 힐>, <귀향> 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이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2009년 작 <브로큰 임브레이스>다.
영화를 왜 좋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많다. 다만 내가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너무 재미있으니까! 강렬한 색채와 영상미, 인상 깊은 연출과 흥미진진한 전개까지 영화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영화감독인 주인공 ‘마테오’와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백만장자의 연인으로 살며 배우의 꿈을 지닌 ‘레나’의 사랑 이야기다. 깨어진 키스, 부서진 포옹이라는 뜻의 제목은 두 사람의 관계와 일맥상통한다. 백만장자는 두 사람의 사랑에 질투하고 레나에게 집착한다. 그리고 결국 이들은 죽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는 이유는 영화 속 감춰진 비밀들로 인해서다. 한때 영화감독이었던 마테오는 왜 지금 시력을 잃고 ‘해리’라는 이름의 작가가 되었는가? 레나는 왜 죽었는가? 큰 줄기부터 작은 비밀들까지 의문과 호기심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를 보며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는 일은 드물다. 일단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재생되기 때문이다. 기다림없이도 다음 장면들이 내게로 온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전긍긍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영화는 점차 진실을 드러낸다.
영화의 매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망은 주인공을 통해 드러나는데 그 부분이 인상적이다. 완성하지 못했던 영화를 14년 만에 다시금 편집하는 장면이다. “훌륭한 영화야. 진짜 재미있어요!”라는 말에 그는 답한다. “중요한 건 영화를 끝내는 거야. 비록 앞이 안 보여도 영화는 끝을 봐야 해.” 영화감독뿐만이 아닌 모든 창작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끝이라는 개념은 각자 다르겠지만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다시하는 행위. 그 지점에 이 영화가 있고, 마테오가 있으며,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있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사람은 영화를 보는 관객일 것이다. 영화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당장 이 영화를 보길. 그리고 영화의 매력에서 허우적대라. 그 팔놀림이 꽤 즐겁다! 그렇게 당신이 관객이 되면 그제야 영화는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