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5ㆍ18민주묘지에 방문한 조선대 교지편집위원회가 지난 6일 위르겐 힌츠페터 기념비 앞에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국립5ㆍ18민주묘지에 방문한 조선대 교지편집위원회가 지난 6일 위르겐 힌츠페터 기념비 앞에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4일 국립5ㆍ18민주묘지를 찾은 고 이방기 교수 가족들의 모습. 이 교수는 지난 2007년 별세한 후 국립5ㆍ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이 교수의 큰 며느리인 나옥희(65)씨는 "기일을 맞아 아내와 아들, 손자, 증손주까지 4대가 함께 찾아왔다"며 "민주화를 위해 평생 힘쓰신 분이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국립5ㆍ18민주묘지를 찾은 고 이방기 교수 가족들의 모습. 이 교수는 지난 2007년 별세한 후 국립5ㆍ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이 교수의 큰 며느리인 나옥희(65)씨는 "기일을 맞아 아내와 아들, 손자, 증손주까지 4대가 함께 찾아왔다"며 "민주화를 위해 평생 힘쓰신 분이다"고 말했다.
​고 이방기 교수는 유신독재 시절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만든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의 주역이다. 이 교수는 1978년 유신 체제 교육정책을 비판하며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문을 발표했다 해직됐다. 1980년 5월 당시에는 동료 교수들과 민주화대성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됐고, 5.18 이후 박관현 열사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하는 등 민주화에 앞장섰다.
​고 이방기 교수는 유신독재 시절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만든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의 주역이다. 이 교수는 1978년 유신 체제 교육정책을 비판하며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문을 발표했다 해직됐다. 1980년 5월 당시에는 동료 교수들과 민주화대성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됐고, 5.18 이후 박관현 열사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하는 등 민주화에 앞장섰다.
고동석(77)씨와 그의 손녀들이 지난 6일 국립5·18민주묘지 제1묘역에서 유공자를 추모하고 있다. 경남 거창에서 가족들과 여행 온 고씨는 “가족들과 5·18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느끼고자 묘지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고동석(77)씨와 그의 손녀들이 지난 6일 국립5·18민주묘지 제1묘역에서 유공자를 추모하고 있다. 경남 거창에서 가족들과 여행 온 고씨는 “가족들과 5·18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느끼고자 묘지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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