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그늘로 여름 나는 110종의 동물들
미스트 분사와 차광막, 얼린 과일과 사료도 핵심
7월 12일 정오 섭씨 33도. 쏟아지는 태양에 광주 북구 우치공원 동물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인간이 냉방을 찾아 더위를 피하듯, 철장 넘어 동물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포유류 38종, 조류 34종, 파충류 38종, 총 110종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우치동물원. 어떤 동물은 물에 몸을 담그거나 움직임을 줄였고, 어떤 동물은 사육사들이 마련한 실내 공간에서 숨을 돌렸다. 낮 최고기온 35도 이상으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광주 유일 동물원의 한낮 풍경을 쫓았다.
효율 택한 코끼리의 정적
동물원에서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인 코끼리사. 코끼리는 그늘 한가운데 흙바닥에 굵은 발을 고정한 채, 긴 코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미동도 없이 파리가 맴돌아도 귀만 천천히 펄럭일 뿐, 움직임을 줄여 체온을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생존 전략이 보였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코끼리는 몸에 땀샘이 없어 귀를 펄럭이며 열을 방출하고 더운 시간대에는 활동량을 제한하며 체온을 조절한다. 우치동물원 코끼리 관리 사육사는 “여름엔 코끼리한테 물을 뿌려주고, 얼음 안에 과일을 넣어 만든 얼음과자를 준다”며 “코끼리들이 한참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코를 뻗어 과일을 건져 올린다”고 말했다.
의지하는 원숭이…조용한 맹수
동물원 서쪽 원숭이사에는 알락꼬리여우원숭이들이 그늘이 드리운 놀이 구조물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추운 날씨에 서로의 꼬리를 덮어주거나 몸을 맞대며 체온을 조절한다. 이는 국제 학술지 <American Journal of Primatology>에 실린 논문(Kelley et al., 2016)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서로 뭉쳐 체온을 유지하면 개별로 있는 것보다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어 신진대사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바닥에는 수박, 키위, 망고, 사과, 배를 얼린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원숭이 사에서는 이를 차지하기 위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눈치싸움’은 파괴적인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정된 자원 앞에서도 극심한 다툼 대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적정선을 지키는 모습은, 앞서 언급된 논문의 내용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지닌 높은 사회성과 집단 유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맹수 우리로 다가가자 묵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자는 해가 들지 않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호랑이는 나무 그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는 실내 냉방 공간에서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담당 사육사는 “맹수가 활발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이들은 더위에 훨씬 민감해서 실내 냉방 공간을 더 자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고양잇과 동물인 표범, 사자, 호랑이, 퓨마, 치타 등은 ‘헐떡거림’이나 ‘그루밍’을 통해 체온을 조절한다”고 덧붙였다.
주변 환경 활용하는 알파카의 지혜
공원 가운데에 자리한 방사장에는 무플론, 과나코, 알파카가 야외에 설치된 파라솔에 몰려 있었다. 그중 ‘움직이는 털실’로 불리는 알파카는 낙타과에 속하는 포유류이다. 주로 고원지대에 서식하며, 두껍고 풍성한 털 때문에 더위에 취약하다. 알파카는 더위를 단순 피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환경을 섬세하게 활용해 체온을 조절한다.
알파카는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대에는 가장 시원한 지점인 그늘이나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를 찾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때 몸의 넓은 면적을 벽에 밀착시켜 털 사이로 열기를 분산시켰다. 알파카는 코와 입 주변에 혈관이 발달해 있어 바닥 가까이에 얼굴을 두고 숨을 고르며 열을 방출했다.
담당 사육사는 이러한 알파카의 행동에 대해 “벽의 미세한 온도 차이를 활용해 체온을 조절하는 습성이 있다”며 “특히 더위에 민감해 먹이보다 먼저 그늘을 찾고, 바람이 드는 방향을 기억해 그 자리에 머무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과 그늘은 조류의 전략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는 물새장의 청둥오리는 물에 몸을 담가 체온을 낮추고 있었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는 이러한 행동이 여름철 조류의 대표적인 생존 전략 중 하나라고 전했다. 황새는 부리를 물에 담갔다가 고개를 흔들며 물방울을 날렸다. 물방울은 공중에서 잠시 반짝이다 땅 위로 흩어졌다. 황새의 짧은 동작 하나에 여름을 견디는 생명의 리듬이 보이는 것 같았다.
두루미는 일정한 보폭으로 천천히 걷다 물가에 멈춰 섰고, 펠리컨은 큰 부리를 벌려 더운 숨을 내쉬듯 물 위에 앉았다. 물새장 사육사는 “이 모든 행동은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물과 그늘을 활용하여 더위를 피하려는 효율적인 선택이다”고 말했다.
해양동물사에서는 멸종위기종인 자카스펭귄(아프리카 펭귄)들이 모여 부리로 서로의 깃털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남극에서 서식하는 펭귄들과 달리 자카스펭귄은 남극이 아니라 수온이 비교적 따뜻한 남쪽 아프리카 해안가에 서식한다. 하지만 펭귄이라는 종 자체는 더위에 취약하므로 동물원에서는 이를 고려해 인공 암벽 그늘과 순환식 냉수 시스템을 갖춘 공간을 마련했다.
덕분에 자카스펭귄들은 한낮에도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였다. 몇몇은 얕은 수조에서 몸을 담근 채 헤엄치며 열을 식혔는데, 천천히 부리를 담그거나 배영으로 등을 물에 누이며 수면 위를 가르고 있었다. 마치 물의 온도를 느끼는 것 같았다. <PBS> 자연 다큐멘터리 <Penguins: Meet the Family>(2022)에서도 펭귄들은 최적의 체온 조절을 위해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탐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펭귄의 움직임이 있는 곳엔 언제나 물과 그늘이 있었다. 사육사들은 펭귄들이 가장 더워하는 시기엔 정어리와 같은 특식을 함께 제공하며 더위를 돕고 있다.
열대조류관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습기 어린 조명이 공간을 채웠다. 한쪽 횃대 위에는 두 마리 금강앵무가 짝을 이루어 날갯짓하고 있었다. 둘은 교대로 서로의 깃털을 다듬고, 때때로 높이 날아올랐다. 이들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깃털을 부풀려 단열 효과를 높이거나, 그늘을 찾아 직사광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물을 깃털에 묻혀 증발시킴으로써 몸을 식히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는 지난 16일, 소나기가 쏟아지던 오후에도 동물원을 찾았다. 그날 동물원은 불볕더위 속 풍경과는 사뭇 다른 생동감을 품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중 웅크리고 있던 사자는 촉촉해진 바위에 앞발을 뻗으며 길게 하품을 했다. 빗물에 젖은 털은 평소보다 짙은 색을 띠었고, 호랑이는 나무 그늘 대신 비를 맞으며 사육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빗방울이 수면에 부딪혀 잔물결을 일으키는 물새장에서는 청둥오리들이 더욱 활기차게 물장구를 쳤고, 황새는 빗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흔들며 샤워를 하듯 몸을 털었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 알락꼬리여우원숭이들은 젖은 놀이 구조물 위에서 평소보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더위를 견디던 동물들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습기와 시원함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동물원 사육사들은 동물마다 다른 여름 생존 방식을 고려해 다양한 조처를 하고 있다. 미스트 분사, 선풍기, 차광막은 물론 얼음 안에 과일을 넣거나 냉동 사료를 주는 방식으로 식이 조절까지 신경 쓴다. 사육사의 하루는 청소나 먹이 주기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무사히 하루를 견디게 만드는 일로 채워진다.
광주 우치공원 동물원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2015년 5월부터는 입장료를 무료화했다. 이곳은 1970년 5월 광주시 직영으로 남구 사직공원 내에 처음 문을 열었던 동물원의 역사를 이어간다. 당시 광주시가 운영하는 공간이었던 사직공원 동물원은 공간의 협소함과 시설 노후화 등으로 1991년 4월 현재의 북구 우치공원 자리로 이전하며 광주시 우치공원 관리사무소 산하 새로운 동물원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