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해지지 않기 위해 묵언 추천
대화를 주도하거나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뱉은 말로 후회할 때가 종종 있다. 말하기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해가 생기거나 쓸데없는 설명이 덧붙게 되었다. 결국 내가 본래 하고자 했던 말은 흐려졌다. 말이 많아질수록 말의 힘이 떨어지는 역설이었다.
이것이 기자가 일주일간 묵언수행을 결심한 이유다. 묵언수행은 마음을 다스리고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한 동양의 오랜 수행 방법이다. 묵언수행은 침묵을 실천함으로써 외부 자극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과 주변을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한다. 현대에는 스트레스 완화와 자기 성찰을 돕는 심리적 기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기자는 완벽한 묵언을 목표로 했지만, 실천 7일 중 한 번은 무의식적으로, 한 번은 불가피하게 말을 뱉고 말았다. 완벽한 묵언에는 실패했지만, 그 두 번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묵언 약속을 지켰다. 나의 묵언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갇히는, 언어라는 불완전성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말하지 않음’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이 글은 묵언수행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한 기획이다.
무심코 나온 말 “아, 너무 더워”
의식적으로 말을 하지 않으려니 입안이 근질거렸다. 평소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고 있었는지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기분에 따라 나오는 흥얼거림, 귀찮은 일을 앞두고 하는 볼멘소리, 여러 감정이 뒤섞인 혼잣말. 꼭 필요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닿지도 않는 말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온다는 것을 묵언으로 알아챘다.
약속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행 둘째 날 아침,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한마디. “아, 너무 더워.” 그 순간 에어컨 리모컨을 찾기 위해 더듬던 손이 민망하게 멈춰 섰다.
소리 없는 대화
묵언을 실천하는 동안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묵언하기. 누군가 말을 걸면 묵언수행 중이라고 텍스트로 알리기. 어쩔 수 없는 상황엔 필담하기, 먼저 질문하지 않기, 구구절절한 설명은 참아보기. 상대 말에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르지 않기.
묵언수행 나흘째 오전,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묵언수행을 시작하기 전, 친구에게 나의 묵언수행 계획을 미리 말해두었다. 친구는 기자와 만났을 때 기자가 진짜로 묵언수행을 하는지 점검하듯 장난치기도 했다.
점심을 먹으며, 친구가 말하면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소통했는데, 이날 대화의 주제는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럼 하지 마”라거나 “이렇게 해보면 좀 낫더라”라는 식의 반응이 먼저 나왔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조용히 몇 글자 적었다. “오키. 이해 완료.” 친구는 잠시 멈칫하다 웃음을 터뜨렸다. “로봇이세요? 나 진심이야”라며 수저를 들었다.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응해주는 것만으로도 대화는 이어졌다.
말과 글 사이의 공백
묵언을 진행할 때는 마침 전대신문의 다음 학기 기획제안서를 선배에게 피드백 받는 기간이었다. 피드백은 팀장과 국장이 말로 질문하고 나는 글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팀장은 기획의도, 취재방향 등을 차례로 기자에게 질문했고, 기자는 노트에 천천히 생각을 적어 보여주었다.
말과 글의 속도가 다르다 보니 질문에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느린 대답 덕분에 말할 때보다 더 분명한 답을 할 수 있었다. 필담을 위해선 적어야 했고, 말을 적기 위해선 먼저 생각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오가는 대화 대신,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주고받았다. 그 결과, 기획의 핵심을 더 뚜렷하게 전달했다고 스스로 느꼈다. 말보다 글이 더 진지했다.
폭우 속 걸려온 전화
묵언 6일째인 지난달 17일, 광주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광주 북구 일대 일일 강수량은 400mm를 넘겼고, 도로와 건물이 물에 잠겼다. 하필이면 그날 기획제안서의 최종 피드백이 예정돼 있었다. 무릎까지 잠기는 장맛비에 슬리퍼를 끌며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밖은 난리였지만 신문사 내부는 수습기자들의 기획서 수정이 한창이었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오치동 도로가 잠겼단다. 30분 거리를 2시간째 퇴근을 못 하고 있어. 너는 괜찮아?” 어머니의 걱정 앞에서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응, 나 학교야. 곧 갈 거야.” 짧은 대답이었다. 묵언을 실천한 이후 두 번째로 말이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참을 수 있었던 말이라고 생각해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어머니의 걱정에 짧게라도 답한 건, 그 순간엔 필요한 일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석식을 먹고 난 뒤, 하나둘씩 신문사의 사람들이 집으로 향했다. 기자는 기획 제안서를 마무리하고 다른 기사를 참고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던 와중이었다. 그때 국장이 기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언제 갈 거예요? 밖에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에요.” 잠시 고민했다. “할 일이 남아서… 이것만 보고 갈게요”라는 말을 손짓으로 표현할까, 아니면 노트에 적어볼까.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정리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말이라면 참아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답변 대신 상대방의 말에 따르는 게 묵언수행에 더 가까웠다. 며칠간의 침묵은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대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이었다.
‘깍두기’가 된 기분
묵언을 실천하는 동안, 일상의 자잘한 의사소통이 새롭게 다가왔다.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 “영수증 필요하세요?” “포인트 있으세요?”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처음에는 무례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정작 상대방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음식점에서는 주문할 메뉴를 스마트폰에 적어 보여주었는데, 사장님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말하지 않아도 일상은 흘러간다는 걸 느꼈다.
묵언수행 5일째, 학교로 향하던 길 평소 지나던 신천지교회 앞에서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찬송가를 반복 재생하는 방법을 물으셨다. 그 순간 해결해 드릴 방법도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기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인 채 자리를 지나쳤다. 그분은 그런 기자에게 거리감을 느꼈을까.
‘입 하나가 주니 다른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더 하게 되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묵언이 누군가의 말할 자리를 열어준 셈이다. 르포 교육 시간, 동기 수습기자들과 기사를 피드백할 때가 그랬다. 구체적인 의견을 말로 하는 대신 글로 간단히 정리해 전달했다. 그 방식은 대화의 흐름을 끊거나 공백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피드백을 줄 땐 꼭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깍두기가 된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킬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이상하게 편안하게 만들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묵언에 익숙해졌다. 답답함은 여전했지만, 기록과 메모를 통해 답답함은 해소되었다. 메모장에 떠오른 생각을 옮기며, 사소한 감정부터 설명이 필요한 말까지 ‘이 말을 꼭 해야 할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평소 말이 생각보다 앞서 나가는 일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의 말은 빠르다. 묵언수행을 통해 기자에게 올라오는 불필요한 말은 걸려져 상대에게 전달됐다.
일주일의 묵언은 말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묵언의 효과를 자주 알아차렸다. 말없이 보내는 시간에 기자의 감정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오히려 더 진솔하고 명확한 대화를 위한 밑거름임을 경험했다.
묵언수행은 7월 19일 0시에 종료되었다. 끝나자마자 하고 싶었던 말을 힘주어 내뱉었다. “아, 애썼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이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 큰소리로 제 자랑을 하거나 허세를 부릴 때 쓰는 말이다. 그동안 확신도 없이 쉽게 시시비비를 가리던 기자의 언행이 빈 수레처럼 요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