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엔 담배꽁초, 다이소 주변엔 포장지, 카페 주변엔 컵과 빨대
폭염 생각하면 플로깅 실천 동기부여 충분

플로깅(plogging)은 이삭줍기를 뜻하는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어 ‘jogging’의 합성어로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하는 활동을 말한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운동과 환경보호를 결합한 이 시도는 북유럽으로 확산 후 세계적 환경 트렌드가 되었다. 플로깅의 창시자이자 플로깅 단체 플로가(plogga)의 설립자 에릭 알스트롬(Erik Ahlström)은 “도시의 모든 러너(runner)들을 적극적인 환경운동가로 만드는 것”이 플로깅의 목적이라 밝혔다.

플로깅은 큰 준비 없이 집게 혹은 손과 쓰레기 봉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인 만큼 주변에서 심심찮게 벌어진다. 우리 대학에서도 사제동행 플로깅, 민주화운동 사적지 플로깅, 유학생 플로깅 등이 전개된 바 있다. 날은 덥고, 쓰레기는 찝찝하고, 사람들의 눈도 신경 쓰이는 이 수고를 기자가 매일 30분씩 7일간 실천해봤다. 

후문 상권에서 기자가 주운 쓰레기.
후문 상권에서 기자가 주운 쓰레기.

처음 3일은 후문 위주로 쓰레기를 주웠다. 첫날은 쓰레기봉투를 챙기는 걸 깜빡해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날이 더워 양산을 쓰고 돌아다니는데도 숨이 막혔다. 가장 자주 본 쓰레기는 담배꽁초와 담뱃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건 과자 상품의 포장지였다. 구역마다 보이는 쓰레기의 종류도 조금씩 달랐다. 카페가 많은 후문에서는 빨대와 컵홀더가 자주 보였지만 다이소 근처로 이동하니 제품의 상표나 포장지가 많이 보였다.

내가 버리지도 않은 쓰레기를 주우려 하니 화가 났다. ‘본인이 산 물건의 포장지를 챙겨가는 게 어려운 일인가?’ ‘간접흡연도 모자라 환경파괴까지…최악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바닥만 쳐다보느라 지나가는 행인과 부딪치기도 하고 쓰레기 아래의 벌레가 손에 붙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쓰레기봉투와 장갑을 챙기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틀 차에 쓰레기를 줍고 다이소를 들렀다 나왔을 때였다. 구매한 물건의 상표와 포장지를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0을 +로 만드는 게 아니라 –를 0으로 만들고 있었나?’

배달 쓰레기, 생활 쓰레기, 일회용 플라스틱 컵, 과자 포장지 등 내가 하루에도 배출하는 많은 양의 쓰레기가 떠올랐다. 그 순간 나의 플로깅은 선행이 아닌 일종의 회개가 되었다.

제1학생마루에서 상대 뒤로 걸으며 기자가 주운 쓰레기.
제1학생마루에서 상대 뒤로 걸으며 기자가 주운 쓰레기.

쓰레기 줍기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신기한 듯 바라보는 행인들의 눈빛에는 무던해졌다. 더위가 조금 가신 나흘째부터는 훨씬 수월하게 쓰레기를 주울 수 있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던 건 쓰레기를 집을 때의 찝찝한 감각이다. 날까지 습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장갑을 챙기지 못한 날에는 담배꽁초나 축축한 물티슈들을 못 본 척 넘어갔다. 콕콕 찔려오는 양심을 눌러 담는 것보다 축축한 담배꽁초를 집는 일이 더 힘겹게 느껴졌다. ‘내일은 꼭 장갑을 챙겨 나와야지’라는 구차한 다짐뿐이었다. 기자의 양심은 고작 순간의 불쾌함에 외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쓰레기와 폭우

나름 꾸준함을 잃지 않았던 일주일 플로깅 챌린지는 6일 차에 위기를 맞았다. 플로깅 6일째인 지난 17일은 역대급 폭우에 우리 대학이 물에 잠긴 날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이 무려 ‘426mm’. 광주시의 도로 154곳이 침수되고, 임동·신안동·석곡동 등 저지대 거주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무릎까지 들어차는 빗물에 쓰레기를 주울 정신이 없었다. 물살을 헤치고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 씻은 뒤 소란스러운 SNS를 살펴봤다. 광주mbc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된 제보 영상엔 뜰채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와 배수로를 틀어막은 쓰레기를 치우는 시민들이 있었다.

엄청난 빗물에 흐릿한 화면 너머로 바삐 움직이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플로깅이 떠올랐다.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매년 장마철이 되면 호수나 배수로로 밀려오는 생활 쓰레기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 길가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단순히 경관을 해치거나 환경에 해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영대-인문대 앞과 상대 뒤 일대에서 주운 쓰레기.
경영대-인문대 앞과 상대 뒤 일대에서 주운 쓰레기.

물난리가 무색하게 다음날 비는 오지 않았다. 또 비가 내릴지도 몰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가 쓰레기를 주웠다. 지난 태만을 메우려 더 열심히 주웠다.

일주일간의 플로깅으로 쓰레기가 많은 곳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캠퍼스 안 구석진 곳이나 화단에는 캔 음료, 담뱃갑 등의 쓰레기가 많다. 상대나 후문엔 가로수 아래, 전봇대 아래에 플라스틱 컵 위주의 쓰레기가 많다. 상대의 특이점은 광고 목적의 종이 쓰레기가 많다는 것이다. 커다란 글씨로 ‘초간편 대출’이 적힌 명함, 부어놓은 듯 여기저기 널려있는 광고물에 짜증도 났지만 전부 주웠다.

일주일간 매일 30분씩 주웠던 쓰레기는 5L 봉투 기준 약 5봉지 정도의 양이었다. 쓰레기를 줍고 보니 기자가 평소 주변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게 됐다. 같은 장소에 같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것을 목격한 날엔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 살인적 폭염을 피부로 느끼며 허리를 굽혔고, 그 과정은 오늘도 쓰레기를 배출하고야 마는 인간에게는 뜻하지 않던 회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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