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섞어 김국으로도 끓여 먹어”
장흥 어업민 결의 통해 무산김 양식 선포
흔히 호남 지방은 ‘맛의 고장’으로 일컬어지곤 한다. 예로부터 농업, 임업, 수산업이 골고루 발달된 덕분에 식량자원이 풍족했던 호남 지역 특성상 음식문화 역시 자연스럽게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일상 속 식탁은 대체로 정해진 음식을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자 역시 서울에서 광주로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바쁜 대학 생활 속 김치찌개와 같은 익숙한 식단에 머무르고 만다. 이에 광주·전남만의 음식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맛의 고장’ 남도의 식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이번 호에선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식당을 방문하지 않고 기자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봤다.
풍요로운 가을의 절정 추석이다. 일주일 가까이 되는 연휴를 맞아 모처럼 시간이 여유로워진 덕분에 드라이브 여행 삼아 장흥으로 갔다. 물론 명절이라 어김없이 고속도로가 막혀 운전하는 것이 힘들긴 했다. 기자의 외가인 충북 충주에서 꼬박 6시간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장흥 읍내가 보였다. 첫눈에 봐도 바닷가 근처의 마을같이 보였다. 추석 다음날이라 그런지 지역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어우러진 모습인 듯했다. 읍내에 위치한 정남진시장에도 고향을 방문한 사람들과 어울려 꽤 활기찬 모습이었다.
오래전부터 장흥에서 무산김이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보통 김을 양식할 때는 산 처리를 자주 한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양식하는 김만큼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무산김을 사기 위해 가게 사장님과 이야기를 할 때도 이 부분을 강조하시곤 했다.
산 처리 하지 않아 건어물 향 풍부
가게 앞에 진열된 김을 보다가 사장님이 직접 김을 손으로 떼어서 먹어보라고 권해줬다. 한 입을 아삭아삭 씹으며 먹어보니 시중에 파는 김에 비해 바다 특유의 건어물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무산김을 양식할 때 햇빛과 해풍에 수시로 김발을 노출시킨다는데 자연 양식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거기에 김 특유의 담백한 맛과의 조화로움도 내 입맛을 자극시켰다.
정남진시장에서 무산김을 판매하는 가게 ‘부산상회’의 대표 이진복씨는 “그냥 먹어도 고소하니 맛있어서 맥주 마실 때 안주로도 제격이다”며 “보통 장흥 사람들은 여기에 굴을 섞어서 김국을 자주 끓여 먹곤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시장 곳곳을 둘러보면 김부각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들도 볼 수 있다. 시장에서 무산김을 구매한 김난초(58)씨는 “실제로 시식해 보니 건어물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며 “추석을 맞아 가족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무산김으로 요리를 해보고자 기자가 직접 사장님이 말씀해주신 레시피대로 김국을 끓여 먹어 봤다. 먼저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굴을 참기름에 볶았다. 그리고 멸치육수에 무를 살짝 넣어 무가 말랑해질 때까지 끓여준다. 그 뒤에 굴과 무산김을 넣고 더 끓이다 보면 김국이 완성된다. 김국을 한 입 먹어보니 굴 비린 맛은 안 나면서 김의 시원한 맛, 또 고소함까지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먹어도 제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산김 양식 선포한 장흥 어업민
김 양식 과정에서 김에 잡조류가 달라붙으면 김의 성장을 막고 심지어 김을 죽이기까지 한다.그래서 1990년대에 독성이 강한 무기산을 사용하여 잡조류를 김발에서 제거한 몇몇 김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무기산 사용이 불법으로 바뀌자 유기산(사과산, 호박산 등) 또는 김 활성처리제라 불리는 약품을 양식장에서 사용하게 된다. 무기산 사용에서 유기산 사용 체제로 변환된 김 양식이 보편화가 된 지금은 생산되는 김의 상당수가 이러한 유기산을 사용하여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기산은 같은 바다에서 생산되는 매생이, 미역 등의 생산량을 줄어들게 만든다. 이에 장흥군 어업민들은 이러한 무기산, 유기산 자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김을 양식하겠다는 선포를 하게 된다.
장흥군청과 ㈜장흥무산김 등에 따르면 장흥 무산김은 전국 최초로 산처리 하지 않은 김을 생산하겠다는 장흥 어업인들의 결의와 각서를 통해 선언되고 생산되는 김이다. 산을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면허 해지, 지원금 회수 뿐만 아니라 양식장 철거까지도 진행될 수 있다.
무산김은 햇빛에 수시로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양식하는데 시간에 맞추어 김발을 수시로 뒤집어 주는 과정을 통해 조직이 약한 잡조류들을 죽이고 조직이 강한 김만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김에서 부산물들을 일일이 걷어내야 하고, 김 성장도 느리며 생산량도 적기 때문에 다른 김 보다 비싼 경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