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교수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한편으로 무한 경쟁의 정글 속에서 ’질적 차별성을 상실한 일상적 삶의 긍정’과 ’자기도취의 문화’로 전락해 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체 안에 ’진정성’이라는 여전히 소진되지 않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진정성의 요구는 계몽의 기획이 자체 안에 품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다. 바로 이 도덕적 이상의 새로운 만회 작업을 통해서 테일러는 계몽에 대한 새로운 계몽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번 전남대학교 강연의 주제인 "계몽의 두 얼굴(내재적 역계몽)"에서 테일러 교수는 먼저 계몽의 흔적을 좇는 과정에서 계몽의 영향을 받은 현대 문화의 부정적 특징을 논의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계몽주의는 전통적 삶의 방식과 사회적 질서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형태의 초월성을 강하게 부정한다.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초월성의 추구는 하나의 환상, 즉 비참하고 비인도적 귀결을 조장하는 위험한 환상이다. 그런데 테일러는 초월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계몽이 이제 세속적 삶의 유지와 번영, 그리고 죽음과 고통의 퇴치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배타적 인본주의로 귀착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몽의 배타성이 안팎의 강한 반발을 자초했다고 말한다.
테일러가 계몽의 내부적 반발이라고 부르는 내재적 역계몽 역시 초월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내재적 역계몽은 평면화된 일상적 삶의 종교화에 강하게 저항한다. 따라서 영웅적인 것의 이름으로, 일상적 삶의 전반적 긍정에서 비롯되는 무기력한 평등주의와 박애, 그리고 조화와 질서에 저항하는 니체의 반인본주의 또한 내재적 역계몽의 하나다. 테일러에 따르면 그러나 니체와 신니체주의의 내재적 역계몽은 삶의 부정과 폭력에 대한 향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매료된다. 테일러는 폭력에 대한 이러한 매료가 초월성에 대한 불완전한 지향에서뿐만 아니라, 무조건적 배타성에도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계몽과 내재적 역계몽의 초월성에 대한 배타적 부정은 ’폭력을 향한 성향’을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테일러는 ’삶을 넘어선 어떤 좋음에 대한 진지한 사랑’, 즉 초월성에로의 전환만이 ’폭력을 향한 성향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테일러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초월성에 대해서 열려 있는 개방적 인본주의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테일러가 말하는 초월성이 ’삶의 번영을 폄하하거나 탈속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는 종교적 초월성’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테일러 교수는 배타적 인본주의와 반인본주의의 일면적 태도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초월적 순수성에도 반대한다. 계몽에 대한 새로운 계몽은 편협성과 일면성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구용(철학연구교육센터 전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