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가도 안되고, 거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도 안된다"
이 글은 Kant가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숭고미를 설명할 때 인용한 글이다. 원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시 수행했던 Savary 장군의 보고서에서 나온 글인데 너무 가까이 가면 전체의 총괄이 어렵고 너무 멀리 가면 부분의 포착이 어렵다는 말이다. 전체의 총괄과 부분의 포착이 가장 잘 이루어진 적당한 거리를 취해야 미적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미적 거리를 의미한다. 나는 이러한 미적 거리를 유추해서 인간의 행동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도덕적 거리를 생각해본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간관계처럼 어렵고 중요한 것도 없다. 예를 들면 A는 B에게 인색한 얼굴을 보인만큼 C에게는 후한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날 B가 A의 두 얼굴을 보고 C에게 A를 비난한다. C는 B에게 동감은 커녕 A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어차피 처음부터 B와 C는 A의 전략에 말려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거리를 분석해보면, 너무 가까이 가면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처세적 적정거리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어두운 면을 잘아는 사람은 공격하고, 자신을 모르는 사람과는 친히 지내는 "근공원친"의 거리도 있고, 시정의 잡배만큼도 의리가 없이 얼굴을 바꾸는 "감탄 고토"의 거리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친구는 개인적으로 만날 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고 여러사람과 함께 만날때는 갑자기 거드름 피우는 체면을 중시하는 거리도 있다. 어떤 정치가는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민중의 편이 되어 싸우고, 그 결과 그의 화려한 투쟁경력으로 지도자로 추앙 받는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후 독재정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서구의 어느 나라에서는 국립묘지에 묻히려면 100년이 흘러야 하고, 국회의 통과를 얻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행동의 부분 포착과 전체 총괄이 잘 이루어진 지점은 어딜까? 미적대상인 피라밋은 고정되어 있는 대상이므로 그 미적 거리는 산술적 거리이지만, 도덕적 평가 대상인 인간의 행동은 결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거리이다. 한 인간 행동의 도덕적 평가 대상은 다양한 여러 측면의 행동과 그것들의 전체이다. 이처럼 부분과 전체를 지속적으로 평가할 때 바로 도덕적 거리는 요청된다.
우리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학연, 지연, 혈연을 벗어나서 편견과 사적인 관심에 얽매이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간격과 거리가 유지될 때 비로소 인간 행동의 보석이라 할 수 있는 도덕성이 드러나며 이 도덕성이 곧 우리의 도덕적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도덕적 거리는 일생동안 우리가 우리의 세속적 욕망과 투쟁해서 획득 해야할 끊임없는 연마와 수양의 길이며 동시에 자유의 길인 것이다./ 문영식 교수(윤리교육·서양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