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이 활발했던 80년대, 학생들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청년 글방을 세웠다"는 문충선 씨(40).
사회·문화·정치의 중심이 서울에 있었던 그 당시 지방에서는 새로운 서적을 구하기 어려워 문화적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청년 글방은 광주에서 학생들이 새로운 사회과학 서적들을 쉽게 구하고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접할 수 있도록 88년 5월 전대정문 사거리에 터를 잡고 문을 열었단다.
"청년글방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함께 하는 문화공동체였다"고 강조하는 문 씨는 "책을 파는 것은 물론 노동자와 학생들이 만나 토론하는 자리도 갖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와 소설을 감상하고 함께 토론했다"고 설명한다.
9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축소와 더불어 운영상의 위기에 놓였지만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청년 글방’은 다수가 운영에 참가하는 조합의 형태로 바뀌면서 지금의 청년 글방자리로 옮기게 됐다.
"자리를 옮기면서 청년글방은 카페 형식을 도입해 책들만 가득한 단조로운 곳이 아니라 차를 마시며 이야기 할 수 있는 편안한 곳으로 바뀌었다"는 그는 "청년 글방이 주관한 영화제, 녹색강좌 등 다양한 영상매체를 통해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인문·사회과학서점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요즘에 거론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요즘은 돈이 되는가 안 되는 가에 따라 지식을 사고 파는 시대다"며 "급변하는 요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씨는 또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인문학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학문이다"고 덧붙인다.
88년 ’청년 글방’이 문을 연 이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청년 글방을 지켜온 문충선 씨.
"지금 청글 공간에서 펼쳐지는 세미나와 같은 여러 행사들이 문화의 흐름으로 잡았으면 한다"며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청년 글방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속에서 청년글방에 대한 애정이 흠뻑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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