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인 대학마저도 폐쇄의 무대로 가고 있다. 바로 대학 인터넷의 게시판, 광장 등이 학교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쇄되고 있다. 게시판 실명제 도입 이후 악화된 대학인터넷 토론방 기능이 이제 그 자리조차 사리지게 된 것. 학생들은 이제 빼앗긴 광장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실천하고 있다.

■사라진 토론〓하루 고작해야 10개 내외의 글이 올라온다. 내용도 행정사항 문의나 교재 교환 정도가 전부다. 토론은커녕 그 흔한 유머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글을 쓴 사람은 제목 옆에 뚜렷하게 박힌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인해야 한다. 파리 날리고 있는 대학 게시판의 현실이다.

지난 3월 고려대 자유게시판 〈자유광장〉은 책임없는 글의 난립으로 게시판의 제역할을 할 수 없다는 명목적인 이유를 들어 실명게시판으로 전환했다. 그 후 5개월 자유광장에는 하루 고작 10-20개 정도의 게시물만 올라온다.

대학의 엠파스라 불리며 수많은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토론공간으로 자리매김하던 고대 게시판은 이제 말 그대로 ‘평범한 게시판’으로 전락했다. 말 그대로 “벼룩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 꼴”이다.

그 동안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리던 고대생들은 어디로 사려졌을까.

■익명게시판의 부활〓실명게시판으로 죽었던 사라졌던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지난 3월 실명게시판을 반대해 만들어진 ‘고려대학교 자유게시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www.jagesarang.org)에는 하루에만 4-5백개의 글이 올라온다.

‘자게사랑’의 송도영(고려대 법학과 98)씨는 “여론 형성, 정보 제공 및 교류, 건의와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의 장을 없앤 것은 명백히 불합리한 처사기에 자게사랑은 자유광장의 부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고려대의 자게사랑의 개설은 여타 대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희대 학부생 2명은 8월초 사라진 ‘광장’을 찾고자 익명게시판(http://khu.info)을 개설하고 “완전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곳에서 마음대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라”며 사라진 학내 네티즌들을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과거 익명게시판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대학생들의 익명게시판 부활 열기는 점차 전국의 대학들로 확산되고 있다. 흐르는 물은 댐으로 막을 수 있지만 흐르는 여론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누가 광장을 죽였나〓광장을 죽인 것은 분명 대학당국이다. 대학도 할말은 있다. 원인제공은 비방과 책임 없는 글을 올린 학생들이라고. 그러나 문제는 실명전환을 진행하면서 보인 대학들의 태도에 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론 공간’이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각 대학들의 실명전환은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됐다.

한편 익명성이 갖는 의미에 대한 학교측과 학생들과의 인식차도 문제다. 학교측은 익명성이 갖는 단점만을 부각한 반면 학생들은 그것이 주는 참여도를 강조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표현의 정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삭제까지 할 수 있다는 대학측의 운영자세에 있다. 인신공격형과 명예훼손 글에 대한 판단은 실질적인 운영자이자 참여자인 대학 네티즌이 배제된 체 게시판 운영자의 자의적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빅브라더스를 자처하겠다는 대학측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이 ‘광장’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익게’ 돌아올 방법 없나?〓관건은 대학과 학생간의 신뢰 회복이다. 신뢰 없는 실명제 강요는 무의미하다. 이용자 없는 게시판은 그 존재 의미를 상실케 하기 때문이다.

고려대 ‘자게사랑’은 “다시 대학홈페이지로 돌아가 부분적으로나마 익명 게시판의 모습을 찾을 것”이 최종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일말의 자유로운 소통공간은 확보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학은 삭제권한을 악용 말고 학생들은 최소한의 네티켓을 지켜라.” 실명게시판 전환을 안타깝게 여기는 네티즌의 바람이다.

<정웅종 기자>;buld@ucpress.co.kr(200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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