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전대신문> 김성 기자
“우리 대학, 지역사회 잊으면 안된다” 

김성 씨가 <전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1973년, <전대신문> 제호는 <전남대학보>였고, 현재 타블로이드 판형과는 다른 대판형 신문이었다. 또한 <전남대학보>를 보는 구성원도 1,500명뿐이었다. 제호와 판형, 독자수의 변화를 몸소 느낄 만큼 김 전 기자는 <전대신문> ‘대선배’다. 김 전 기자를 만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가치, 대학신문 기자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 들어봤다.

김 전 기자는 <전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을 겪었다.

“캠퍼스 안에는 경찰로 가득했었다. 학내에서 학생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그 시절, 언론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우리는 그와 관련한 기사를 크게 보도하지 못했었다.”

김 전 기자는 “우리 대학이 유신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는 대학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 대학은 4·19항쟁 이후부터 끊임없는 시위를 벌이는 대학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김 전 기자는 “신중하고 절제된 단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 전 기자에게 <전대신문> 생활은 그의 평생을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는 1980년 당시 <전남매일신문>에 입사해 이후 22년 동안 광주 언론사의 기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지역활성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투철한 정신, 민주, 인권, 평화가 각인된 대학. 이는 우리 대학의 큰 장점이며 그 뿌리는 지역도민으로부터 나왔다.”

우리 대학은 지역도민과 향교의 기부로 세워진 대학이다. 김 전 기자는 “이를 잊지 않고 지역사회에 보답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시절에도 그는 이러한 자세들을 “많이 의식”했다.

“대학 구성원들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창의적인 도움으로 보답해야한다. 또한 대학이 끊임없이 개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자극하는 것이 대학신문의 역할이다.” 

흔히 대학시절을 ‘황금같다’고들 말한다. 김 전 기자에게도 대학시절은 황금기였다. 그는 대학시절을 “철학과 인생의 가치를 논하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그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이를 명심하고 현재의 대학생활에 충실하라”고 조언했다. 이어 “썩어있는 사회에 대해 분노, 한탄만 하지 말고 끊임없이 개혁될 수 있도록 실천하라”고 말했다.

신원경 기자 salang-94@hanmail.net

 

■펜으로 학생운동 대열에 함께한 1989년 <전대신문> 편집장
“대학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전대신문> 되길” 

“펜은 나의 무기였다.”

1989년 <전대신문> 편집장이었던 박광우 씨(행정학·87)는 4·19혁명을 시작으로 5·18민중항쟁을 거쳐 6·10항쟁까지 학생운동 대열을 쫓아다녔다. 우리 대학을 졸업하고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간사, 광주일보, 전남매일, 시민의 소리 기자,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는 박 전 편집장을 만났다.

“6월 항쟁은 우리 사회의 큰 전환점이었다. 헌법이 개정되면서 ‘87년 체제’를 탄생시켰고, 폭압에 억눌렸던 민중들의 요구가 분출됐다. 당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력부대 중의 하나였던 학생운동은 그 짐을 짊어져야 했고 대학신문도 그러한 역할이 요구됐었다.”

박 전 편집장은 “그 때 그 시절 대학신문에게 요구된 역할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 시절을 대변하듯 <전대신문>도 거칠었다. 이는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박 전 편집장은 이를 잘 보여주는 추억하나를 꺼내 들었다.

“80년대 초반, 대학마다 경찰이 상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대신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시절 제대로 신문을 만들 수 없었다. 선배들은 제작거부로 그들에 맞섰다.”

‘펜을 꺾을지언정 곡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고비들을 넘겼다. 그때마다 박 편집장은 “지면으로 모든 것을 승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제작에 온 혼을 쏟아 부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사는 “사회변혁운동론, 북한 바로알기, 미국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의 기획기사”라고 했다.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할 ‘대학신문’은 “독자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박 전 편집장은 말했다.

“교수, 학생, 교직원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신문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그래서 신문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전대신문>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발로 뛰며 독자들과 함께 호흡해야겠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기 전 박 전 편집장은 광주에서 기자생활도 했었고 시민단체 활동 등도 했었다. 그는 “이런 인생의 자양분을 <전대신문> 시절에 얻었던 것 같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당시 ‘시대와의 불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었다. 서정주 시인이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나를 키운 건 8할이 전대신문’이다.”

신원경 기자 salang-94@hanmail.net

 

■<전대신문> 2년차, 문화팀장 이화진 씨
“힘들지만 후회해본 적 없다” 

<전대신문> 문화팀장 이화진 기자(철학·10), 벌써 <전대신문>에서 2년을 보냈다. 그는 2010년 9월에 입사해 현재 3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다. 대학 생활 대부분을 <전대신문> 기자로 살아온 그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게 기사는 어렵다. 그는 “신문 제작은 정신적, 육체적로 힘들다”며 “내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제작 후에 아쉬움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일명 ‘짬’ 좀 되는 <전대신문> 2인자지만 제작주를 앞둔 일요일엔 늘 초조하단다. “제작주가 되면 막막하다”며 “회의하고, 후배 기사 피드백하고, 인터뷰 컨택하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수업 듣고, 한숨 돌리기도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전대신문>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떠나긴 힘들다. 그에게 <전대신문>은 가장 힘든 곳이지만 많은 것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신문 발행을 통해 성장하는 다음의 나를 기대하게 한다”며 “‘이화진’이라는 사람은 평소 낯을 많이 가리지만 ‘<전대신문> 기자 이화진’은 스스럼없이 낯선 사람을 대한다”고 말했다.

허름했던 예대계단이 수리된 것도, 학내에 설치된 안내촉지도가 다시 작동하게 된 것도 모두 그의 ‘기사’ 때문이었다. “최근에 안내촉지도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냈는데 얼마 뒤 안내촉지도가 재작동되었다”며 “나는 그냥 작은 글을 하나 썼을 뿐인데 그 기사로 변화를 봤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던 기사가 있는 반면 부족함을 느끼게 한 기사도 있었다. “작년 인문대에서 절도된 물건을 찾아가라는 기사에 담당 형사의 전화번호를 잘못 적었었다”며 “그 기사는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기사였다. 그 기사는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전대신문>은 신문을 발행한 월요일에 신문에 대한 평가, 조직에 대한 평가, 나에 대한 평가를 하는 평가회의를 갖는다”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전대신문>의 기자가 될 사람들에게 말했다. “힘들지만 <전대신문>에 들어온 것을 후회해 본적은 없다. 평범한 대학일상과 달리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하며 배우는 것이 많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고 재미삼아 들어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죽어가는 대학신문에서 편집권 자치를 얻어낸 <전대신문>이다. 한번쯤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라고.

벌써 1500호를 발간하는 <전대신문>은 우리 대학과 58년의 유구한 역사를 동고동락했다. 우리 대학이 성장하는 60년의 세월을 <전대신문>은 오롯이 담고 있다. 이 기자는 이러한 <전대신문>에 대해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 “<전대신문>은 전남대에, 전남대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굉장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전대신문>을 정독하진 않더라도 외면하지는 말아달라”고 학생들에게 전했다.

정현주 기자 hyunjulal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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